증권가의 오랜 속설 중에는 '미국 증시가 기침만 해도 한국 증시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대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증시를 살펴보면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일 코스닥 지수는 34.78포인트(5.98%) 하락한 562.91로 지난 1월23일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8일 코스피 지수는 43.71포인트(3.46%) 급락한 1223.13으로 주저앉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지난 5일 버냉키 의장은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와 경기둔화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던 것이다.

금리인상 우려 속에 세계 증시는 꽁꽁 얼었다.

이처럼 해외 증시와 똑같이 국내 증시가 움직인다는 것을 일컬어 '동조화'라고 한다.

동조화는 개개의 주식시장이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각국의 증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미국 증시에서 다우존스 지수가 오르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옛 종합주가지수)도 힘을 받는다. 일본 닛케이나 대만 가권지수도 마찬가지다. 또 반대로 다우존스가 하락하면 코스피 지수도 떨어진다.

예컨대 지난 9·11테러 당시 미국 증시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는 동반 폭락을 경험했다.

올 들어 한국과 미국 증시를 살펴보면 동조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과 미국의 증시 동조화 비율은 61.11%에 달했으며 한국과 일본의 증시 동조화 비율은 75%에 달했다.

증시 동조화율은 전체 거래일 중 두 나라의 주가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인 날의 비율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증시 개장에 앞서 전날 미국 증시를 점검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올 들어 증시 동조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예컨대 월요일에 주가가 폭락했다면 신문에 세계 증시가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에 휩싸였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증시 동조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계 증시가 동조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근 들어 석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그에 따른 각국의 금리 인상이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게 주요 원인이다.

실제로 미국은 2004년 6월 이후 16차례나 연방기준금리(우리나라의 콜금리에 해당)를 올렸다.

우리나라도 지난 7일 콜금리를 4.25%로 올렸고 일본도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후 증시 동조화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투자한다. 따라서 대규모 기관투자가가 투자금을 거둬들이거나 늘릴 경우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주식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에서는 외국인 투자 제한 철폐 이후 동조화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다.

국내 대부분의 우량주는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고 있다.

동조화 현상은 반드시 시장에 부정적으로 나타나지만은 않는다. 금리 인상을 지속해 온 FRB가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경우 미국 증시뿐 아니라 국내 증시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보기술(IT) 대표주인 인텔이나 인터넷 대장주인 구글의 실적이 좋을 경우 국내 관련주들이 강세를 보이기도 한다.

증시 동조화는 심리적인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 시장 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장기 투자보다 단기 투자가 많을수록 동조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합리적인 투자 문화가 자리 잡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 경제 상황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체질이 개선될 경우 동조화 현상은 줄어들 수 있다.

한화증권 이영곤 연구원은 "올 들어 거의 매일 미국의 경제 상황과 다우존스 및 나스닥지수 동향을 체크해야 할 정도로 증시 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투자 문화와 해외 변수에 좌우되지 않을 정도의 기업 체질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진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