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항만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정부와 환경단체 간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발'과 '보전' 중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이냐가 첨예하게 맞선 탓이다.

정부는 경제의 장기 발전을 위해 대형 개발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환경단체 등은 국책사업이 환경 파괴로 이어져 결국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개발도 환경만큼 중요하다

국책사업은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업 목적과 추진 방향을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며,정부 예산을 투입해 시행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국책사업으로는 새만금 간척사업,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원전수거물관리센터 건설,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공사 등을 들 수 있다.

국가가 국책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반적으로 도로·항만·철도 건설 등은 규모가 워낙 커 민간기업이 맡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데다 자본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길어 민간 기업이 투자하기엔 벅차기 때문이다.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신도시 건설 등이 그런 사례다.

국책사업을 놓고 제기된 소송에서 그동안 법원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개발 역시 소중한 헌법상의 가치라고 판단해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불확실한 '환경보호론' 때문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 국책사업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지난 3월 "해양 환경 파괴나 담수호 수질 문제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전혀 해결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고,경제성 문제 역시 충분한 분석 과정을 거쳤다"며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경 파괴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

환경단체는 정부가 충분한 사전 조사나 해당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해 국책사업은 타당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특히 정부 주장대로 개발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환경보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큰 이익이라는 게 환경단체의 주장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우 예정대로 방조제가 완공되면 바닷물 흐름이 나빠져 방조제 바깥쪽 해양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쳐 인근해 고기 종류의 70∼80%가 감소하고 해양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새만금으로 흘러들어오는 만경강과 동진강의 수질이 좋지 않아 새만금이 제2의 시화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환경단체는 따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공사를 중지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비가 아까워 계속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공사로 인한 이 지역의 환경오염은 자연의 치유력으로 수년 내 원상 회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책사업 지연으로 경제 손실 눈덩이

문제는 환경단체와의 갈등으로 국책사업이 표류하면서 이로 인한 경제·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사업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 공사 △경인운하 건설 등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공사가 늦어진 4대 국책사업의 공사 지연 손실액만 2004년 말 현재 2조7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 역사(役事)로 불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환경단체의 잇단 소송 제기로 공사가 늦어져 완공 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7년이나 미뤄졌다.

대구∼부산 간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2003년 첫삽을 떴지만 지율 스님의 단식 농성 등에 의해 최근까지 공사가 중단된 천성산 터널공사의 경우 공사 중단 손실이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일산과 퇴계원 사이 사패산에 터널을 뚫어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만드는 사패산 터널공사 역시 공사 중단 손실이 2004년 말 기준 5700억원에 이른다.

19년을 끌다 지난해 말 해결된 원전수거물관리센터도 그간 갈등에 따른 후유증이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부가 원전센터 해결을 위해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까지 지급해 사회적 갈등이 국가 주요 사업의 비용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대법원 "도롱뇽은 소송당사자 될 수 없다" ]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는 2002년 공사 착공 이전부터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터널 굴착 및 고속열차 통과로 인한 지하수 고갈,인근 늪의 생태계 파괴,소음·진동에 따른 사찰 환경 악화 등을 우려한 반대였다.

이에 정부는 대안(代案) 노선을 추진하다가 2003년 9월 기존 노선 강행 방침을 결정,공사가 재개됐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가 환경영향평가 부실을 이유로 그해 10월 공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법적 분쟁으로 비화됐다.

2004년 4월과 그해 11월 1·2심 법원이 환경단체가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공사는 재개됐지만 지율 스님이 100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여 정부와 환경단체가 공동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천성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동물인 '도롱뇽'이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2003년 10월 환경단체 등이 가처분 신청서에 '도롱뇽'을 소송 당사자란에 적어 인간이 아닌 자연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도롱뇽은 천성산에 산재해 있는 22개의 늪과 12계곡에 가장 많은 개체 수를 가지고 있는 종이다.

특히 멸종 위기 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꼬리치레 도롱뇽은 천성산이 대규모 서식지다.

그러나 도롱뇽은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끝내 소송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는 양서류인 도롱뇽은 '자연물'이고 도롱뇽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