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6월2일자 A5면

북한의 핵 시설을 원자력 발전소로 바꾸려던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한국 미국 일본이 주도해 온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지난달 31일 뉴욕에서 집행이사회를 열어 북한 경수로사업을 완전 종료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뒤처리는 주계약자로 공사를 책임진 한국전력공사가 맡는다. 한전은 청산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용도 폐기된 기자재에 대한 권리를 갖고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청산 비용은 최대 2억달러. 한전은 총 114건의 하청 계약을 맺고 있는 국내외 업체에 사업 종료에 따른 손실을 최대 1억5000만달러 물어줘야 한다. 미수금 5000만달러도 회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작하다 만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총 8억3000만달러어치 기자재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했다. 8억3000만달러의 제작 비용을 다 건질 수는 없어도 청산 비용보다 높은 값에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 경수로에 들어간 사업비는 총 15억달러로 이 중 우리가 11억3700만달러를 내고 일본이 4억700만달러,유럽연합(EU)이 1800만달러를 분담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최근 북한 함경남도 금호지구(신포) 경수로 사업의 공식 종료를 선언함에 따라 대북 경수로 사업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1995년 12월 KEDO와 북한 간 경수로 공급협정이 체결된 후 10년6개월,1997년 8월 착공식을 가진 후 8년10개월 만이다.

이른바 '북핵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1994년 10월 성사된 북미 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 따라 탄생한 KEDO 경수로가 콘크리트 덩어리만을 남긴 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KEDO 집행이사회는 '북한 밖에 있는 KEDO 소유의 경수로 기자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한국전력공사(한전)에 양도하는 대신 한전이 청산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경수로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는 또 경수로 사업과 관련한 재정적 손실에 대해 KEDO가 대북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북한에 대해 자산 반출을 요구하기로 했다.

경수로사업은 이제 청산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개발 시도로 제네바합의 깨트려

신포 경수로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북한이 핵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KEDO측은 2003년까지 100만kW급 경수로 2기를 건설하고,완공 전에는 중유를 공급키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북·미 간 제네바합의가 이뤄진 후 3년이 지나서야 공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업종료 선언 때까지 총 46억달러의 공사비 가운데 15억6200만달러가 투입돼 35%의 공정이 진행되는 데 그쳤다.

경수로사업은 당초 북한이 원자로 연료봉 재처리(플루토늄 추출)를 통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지원됐다.

하지만 북한은 경수로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2002년 10월 우라늄 농축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핵개발을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구성된 6자회담에서도 '떼쓰기'로 일관했다.

북한은 핵동결 해제에 이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제네바 합의의 핵심인 '핵동결의 성실한 이행'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북한쪽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열린 제4차 6자회담 2차회의에서 발표된 9·19 공동성명에 KEDO 경수로 대신 200만kW 전력을 북한에 직접 송전하는 우리 정부의 '중대제안'이 포함되면서 경수로 사업은 종료가 예고됐으며 올 1월8일 한국과 미국의 경수로시설 유지 인력이 모두 철수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대북 영향력 행사 못하고 부담만 떠안아

문제는 북핵문제 해소라는 명분과 미국의 압력으로 우리나라가 경수로 총공사비의 70%를 부담하면서도 정작 제네바합의 과정에서 제외되는 등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의 달러위조 문제 등에 따른 북·미 간 갈등으로 6자 회담 개최 여부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경수로 사업이 무산됨으로써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감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KEDO가 경수로사업 중단으로 인한 재정적 손실을 변제해줄 것을 북한측에 요구했다지만 북한이 이를 갚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참여업체의 클레임비용 등을 포함해 1억5000만~2억달러로 추산되는 청산비용을 한전이 떠맡는 대신 기자재에 대한 권리를 갖기 때문에 추가 손실이 없을 것이라는 정부 발표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청산비용 회수 등 후속조치 원만히 매듭지어야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이번 KEDO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들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과 협조체제를 다져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청산비용을 회수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원전기자재 활용방안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확인됐듯이 북핵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북관계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자칫하면 경제적 부담만 떠안게 된다는 점을 정부 당국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 풀이

◆KEDO=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머리글에서 따온 것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로 불린다.

1994년 제네바에서 체결된 미국과 북한 간 합의문 이행과 북한에 대한 한국 표준형 경수로 지원 및 자금조달을 추진하기 위해 1995년 3월9일 설립된 국제 컨소시엄.한국을 비롯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브루나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벨기에 필리핀 태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독일 등이 참여했다.

◆경수형원자로=핵분열시 튀어나오는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감속재로 경수를 사용하는 원자로로,경수로(輕水爐)라고도 한다.

물은 경수와 중수로 나뉘어지는데 중수에는 보통 우리가 쓰는 물인 경수에 비해 수소가 하나 더 들어 있다.

화학식으로는 물이 H2O이며 중수는 H3O다.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에서 따온 것으로,핵확산금지조약(核擴散禁止條約)이라고 한다.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대해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동시에 금지하는 조약으로 1969년 6월12일 체결됐다.

◆제네바합의=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체결한 것으로,10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측은 경수형 원자로 발전소 2기를 건립하고 연간 50만t의 중유를 지원하며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