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때 약간의 수치곁들이면 "아! 그렇구나"

대화를 할 때 약간의 수치를 곁들이면 그 내용을 빠삭하게 알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두서없는 주장이라도 그 속에 몇 개의 수치를 인용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긍을 한다.

이처럼 숫자는 과학적이라는 이미지와 설득력있는 힘을 갖기 때문에 노련한 말꾼들은 필요한 경우에 숫자를 갖다 붙인다.

그러나 그런 숫자들은 대부분 어떤 근거도 없는 어림수인 경우가 많다.

자기의 주장을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순전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숫자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에 주눅이 든 '수문맹'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어림수일지라도 언제나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상대방에게 몇 개의 통계숫자를 갖다 대면 상대방은 어리벙벙해져서 반박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영국수상을 지낸 디즈레일리(Disraeli)는 항상 통계수치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각종 통계수치를 조목조목 인용해 대답함으로써 의원들의 예봉을 잘 피해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대답을 할 때마다 그는 항상 메모지를 보면서 각종 통계수치들을 인용했다고 한다.

디즈레일리 수상이 국회에서 답변을 하던 어느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수상은 그 날도 그의 특기를 살려서 숫자가 포함된 조리있는 대답으로 의원들의 말문을 막았다.

그런데 수상이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실수를 해 그의 메모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수상의 통계수치 인용에 대해 평소에 감탄(?)해온 한 호기심 많은 국회의원이 그것을 주웠다.

그 의원은 도대체 메모지에 무엇이 써있을까 하는 것이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메모지를 본 의원은 깜짝 놀랐다.

수상이 열심히 들여다보며 참고를 했던 메모지는 숫자 하나 적혀있지 않은 백지였던 것이다.(김양호·조동준 공저,화술과 인간관계 4,도서출판 시몬,1992,229쪽 인용)

우리에게 주어지는 숫자로 된 정보의 상당수는 추정치,즉 어림잡아서 추측된 값이다.

상대방이 이런 어림수를 들이 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림수로 남을 속이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들이 사용하는 어림수가 어떻게 계산됐는지를 설명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사용하는 어림수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그 어림수의 근거에 대해 질문을 해 보아라.상대방이 근거를 대지 못하고 당황해 한다면 억지로 꾸며낸 숫자가 틀림없다.

믿을만한 근거를 댄다고 해도 여전히 아전인수격으로 꿰어 맞춘 것일 수도 있으므로 상대방의 주장을 입증하는 추가적인 증거(숫자)가 있느냐고 물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이 숫자의 권위를 이용해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주눅들지 말고 어림수의 계산 근거와 추가적인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는 한 부부가 시골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길 옆은 넓은 풀밭이 있는 목장지대였다.

수많은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 옆을 지나면서 운전을 하던 남편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부인에게 물었다.

'저 목장의 양이 몇 마리나 되는 줄 알아?''그걸 어떻게 알아요,저렇게 많은데'하고 부인이 대답했다.

남편은 '내가 세어보니 1342마리야'라고 말했다.

부인은 놀라서 '대단하군요,그렇게 많은 양들을 언제 다 세었어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양을 센 것이 아니라 다리를 세서 4로 나누었지."

이 예는 물론 과장된 농담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추정된 어림수의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어림수를 대하면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게 정확한 추측이 가능한가를 반문한다면 그런 어림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다음은 1950년의 세계연감(World Almanac)에 실린 내용 중 하나다.(Langley, Practical Statistics-simply explained,Dover,1970,37쪽) 그 해에 전 세계에서 헝가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800만1112명이라고 나와 있었다.

방금 말을 배운 어린아이까지 정확하게 포함된 숫자라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하늘에서 떨어진 숫자라는 느낌을 준다.

미국의 권위 있는 일간지인 뉴욕 타임즈에 뉴욕시에서 있었던 퍼레이드의 비용에 관한 기사가 실렸었다.(Langley.앞의 책,13쪽) 이 기사에 따르면 성(聖) 패트릭 축제일(St.Patrick's Day) 퍼레이드에 시 당국은 8만5559.61달러의 비용을 지출했고,푸에르토리코의 날(Puerto Rican Day) 퍼레이드에는 7만4169.44달러를 지출했다고 발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퍼레이드에 든 비용을 몇 원까지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확한(?) 어림수를 발표하는 것은 이 신문사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고 사소한 것에도 정통하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 주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 신문은 매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까,아니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정확한 숫자가 나왔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까? 내 생각에는 후자의 독자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로치(Hal Roach)라는 코미디언이 자연사 박물관의 안내원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Mauro,Statistical Deception at Work,New Jersey·LEA,Inc,1992,62쪽) 어느 날 한 방문객이 선사시대의 공룡의 뼈를 구경하다가 그 뼈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를 안내원에게 물었다.

안내원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300만17년이 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연대의 정확함에 놀란 방문객이 그렇게 정확한 숫자의 근거를 다시 물었다.

안내원은 "내가 여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그 뼈는 300만년 된 것이라고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여기에서 17년 동안 일을 했다"고 대답을 했다.

공룡의 나이 300만년은 원래부터 추정치인 것이다.

거기에다 17년을 덧붙여서 말하는 것은 정확한 수치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예는 과장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유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저 허세를 부리거나 아니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림수를 정확성으로 종종 치장하는 것이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