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5월27일 A1면

"IT(정보기술)시대 이후에는 FT(Fusion Technology·퓨전기술)의 시대가 올 것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 앞으로 10년 뒤에 나타날 미래사회의 기술 트렌드를 IT와 BT(바이오기술) NT(나노기술)가 융합된 'FT의 시대'로 전망했다. 그동안 IT분야에 국한됐던 반도체의 응용처가 생명과학 의료 에너지 등으로 무한 확장될 것이란 예측이다.

황 사장은 26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6' 기조강연에서 "반도체는 음악 동영상 게임 TV 등 모든 콘텐츠를 하나의 디지털기기에 집적시키며 IT 컨버전스(융·복합) 시대를 이끌어왔다"고 소개한 뒤 "앞으로는 IT산업이 의료 에너지 우주 환경 등 모든 산업과 융합되는 퓨전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chihiro@hankyung.com

------------------------------------------

IT(정보기술)시대 이후에는 FT(퓨전기술)시대가 올 것이라고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이 최근 열린 '서울디지털포럼 2006'에서 밝혔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퓨전기술이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며,이러한 FT(Fusion Technology)시대에는 기존의 기술과 기기 간 컨버전스(융·복합)와는 다른 차원의 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 그 골자다.

한마디로 IT에 BT(바이오기술) NT(나노기술) 등이 융합된 'FT'가 미래의 기술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융합기술'로 불리는 FT는 최근 급속 발전하고 있는 IT를 비롯 BT NT분야 등을 서로 합친 것(Synergistic Combination)으로,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경제 및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과학재단(NSF)의 발표에 따르면 IT와 NT를 융합한 나노응용반도체 시장은 앞으로 10년 후 350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미국 일본 등은 과학기술 기반 및 인프라 구축,인력 양성과 기술 혁신 촉진 등 융합기술을 신산업 창출로 연결짓기 위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상 과학소설 소재가 '마이크로 로봇'으로 현실화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공상 과학소설 '환상의 항해'를 1987년 영화로 만든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가 큰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주인공들은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잠수정을 타고 혈관 안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간 레이저 광선으로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환자가 흘리는 눈물을 타고 몸 밖으로 나온다는 게 그 줄거리다.

이 같은 공상 영화의 소재가 20년이 채 안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연구진들은 IT·BT·NT 융합기술을 이용해 머리카락 절반 두께의 초소형 기어로 조립한 모터와 손톱만한 크기의 하드디스크가 부착된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어 환자 치료에 이미 활용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또한 동물과 기계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바이오'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초정밀 가공이 가능하게 돼 기존 반도체 제작 공정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은 물론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약물 전달체도 개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모리와 로직은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포함된 퓨전 반도체 및 자체 분석과 행동,판단 능력을 갖춘 랩 언어 칩도 머지 않아 선보일 전망이다.


○미국 일본 등 융합기술의 산업화 지원에 '올인'

이러한 융합기술이 미래의 첨단 산업에 미칠 파급효과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IT와 NT 융합기술이 미래의 모든 정보통신 고기능 소자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기반기술이 될 것이라는 미국과학재단의 전망을 굳이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IT BT NT 간에 어떠한 경계도 없어질 것이며 융합기술을 통해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기존의 주력산업에 IT BT NT 등 첨단기술을 접목시키는 등 융합기술을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국은 IT에 BT와 NT를 융합함으로써 모든 분야에 걸쳐 세계적 리더십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일본도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제조 노하우를 블랙박스화하는 등 NT를 중심으로 한 융합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1998년부터 국립시험연구기관을 포함한 산·학·연 23개 기관으로 개방적 융합연구추진시스템을 구축해 학제적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도 산·학·연 협력체제 구축 서둘러야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융합기술을 육성하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추진해오지 못해왔다.

부처별로 기존의 IT BT NT분야 R&D 프로그램과 연계한 소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게 고작이다.

더욱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부해 온 IT산업은 근래 들어 미국 등 선진국의 공세에다 후발국인 중국의 추격으로 인해 자칫 너트 크랙커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융합기술 분야의 취약한 기초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IT분야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설비투자 확대 등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보다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기술 융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만큼 우수 인력 확보와 인프라 구축 등 장기적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 용어풀이 ]

◆융합기술=BT와 IT,NT와 IT,방송 통신과 IT,기계공업 또는 제조업과 IT,문화산업과 IT의 융합 등 여러가지 핵심기술이 합쳐진 것으로 과학기술계에서는 21세기를 '기술융합의 시대'로 부르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비밀을 풀어낸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BT와 IT 융합의 대표적 사례이며,우리가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첨단 휴대폰은 IT와 통신,방송,카메라 기술,소형 컴퓨터 제조기술 등이 융합된 사례로 꼽힌다.

◆6T=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BT(Biology Technology 바이오 기술) NT(Nano Technology 나노기술) ST(Space Technology 우주항공기술) ET(Environment Technology 환경기술) CT(Culture Technology 문화콘텐츠 기술) 등 인류의 미래를 주도할 6가지 첨단기술을 말한다.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가전 통신 방송 등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제품이나 기술을 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