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설명했듯이 숫자가 포함된 정보를 비교할 때는 △비교되는 특성이 같고 △비교되는 특성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비슷한 경우에 올바른 비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원칙을 지켰더라도 원래의 비교 대상 크기가 다른 경우에는 잘못된 비교를 하기 쉽다.

이 같은 잘못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교통사고는 안개 낀 날에 비해 맑은 날에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맑은 날이 안개 낀 날보다 운전하기에 더 위험하다는 말일까? 실은 그렇지 않다.

교통사고가 맑은 날에 많은 것은 안개 낀 날에 비해 맑은 날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기혼자가 독신자보다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주장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 중에서 기혼자가 독신자에 비해 많다는 이유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20세 이상의 남자 중에서 80% 정도는 기혼자이다.

따라서 기혼자가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이 독신자에 비해 낮더라도 알코올 중독자 중에는 여전히 기혼자가 많은 것이다.

이처럼 어떤 대상들을 비교할 때 원래 대상들의 크기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어느 해의 미국 해변에서 일어난 상어 습격 통계를 보면 희생자의 대부분이 남자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상어들이 여자들의 냄새는 싫어하고 남자들의 냄새에는 자극을 받아서 공격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시 아니다.

대부분의 상어 공격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자들인 까닭에 상어 공격의 희생자들 중에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교통사고 관련 통계에서도 이 같은 오류는 흔하게 등장한다.

통계에 따르면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릴 때보다 보통 속도로 달릴 때 사고가 더 많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 더 안전할까? 대부분의 운전은 보통 속도에서 이루어지므로 사고도 보통 속도에서 더 많이 나는 것이다.

또 교통사고는 대부분 집 주위 50km 이내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장거리 여행이 더 안전하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집 주위에서 운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사고로 희생당한 어린이의 약 38%가 집으로부터 반경 1km 이내에서 사고를 당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노는 아이들이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단지 대다수 아이들이 집 주위에서 놀기 때문에 집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많은 것이다.

보험개발원에서 1993년 한 해 동안의 사고를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전 4시에서 6시 사이에 운전하는 것이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교통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사고도 많은 것이다.

이에 반해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오전 4시에서 6시 사이에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사고 피해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30대가 26%로 가장 많았다.

이 통계를 인용한 한 신문의 기사에서는 30대의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30대가 술을 자주 마시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분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운전자 중에서 30대의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피해자 중에도 30대가 많은 것이다.

비교 기준을 제시해 숫자 비교를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 권장 가격을 예로 들어 보자.소비자 권장 가격은 1970년대 말에 유통업체의 지나친 폭리를 막고 가격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만든 것이다.

소비자 권장 가격이란 제조업체들이 이 정도 가격에서 소비자들이 샀으면 해서,혹은 소매업체가 이 정도 받으면 적당한 이윤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매긴 가격이다.

따라서 권장 소비자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그 상품에 대한 적정가격의 기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가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지불하는 가격이 적정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상품 가격을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 가격(reference price)과 비교한다.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준 가격은 과거에 같은 물건을 살 때 지불했던 가격일 수도 있고 현재의 시장 가격일 수도 있다.

소비자 권장 가격도 바로 이 같은 기준 가격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장품·의약품·의류·세제·가전제품 등의 소비자 권장 가격을 실제 판매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게 표시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현혹당하는 사례가 빈발,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럼 기업들은 왜 기준이 되는 가격을 실제 판매가격보다 높게 매기는 것일까?

소비자들은 소비자 권장 가격보다 훨씬 낮은 판매가격을 보고 무엇인가 이득을 보는 기분으로 물건을 산다.

경영학에서는 이 이득을 거래 효용(transaction utility)이라고 한다.

(Thaler,Richard(1985),"Mental Accounting and Consumer Choice," Marketing Science,Vol. 4,No.3(Summer).199~214쪽 참조)

그러나 다른 상점에서도 그 할인 가격에 팔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알면 소비자 권장 가격은 기준 가격으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어떤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늘 속는 기분이 들고 이런 현상은 제조업체·유통업체 그리고 소비자 사이의 건전한 유통질서 수립에 큰 장애가 된다.

물건 값을 올리고 싶어 하는 제조업체들이 여러 가지 규제와 소비자의 감시 때문에 함부로 물건 값을 올릴 수 없는 경우에는 소비자들의 기준을 헷갈리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즉 소비자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는 그 물건에 대한 기준 가격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이름을 바꾸거나 용기를 다르게 하거나 과대 혹은 호화 포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 상품인 양 판매를 하면 소비자들은 이미 갖고 있는 기준 가격을 새 상품에 적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준(오른 가격)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준 헷갈리기' 수법은 다양한 상품 품목에서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PC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때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포장만 크게 해서 포장을 안한 것에 비해 값을 두 배 이상으로 받아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가 있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자장면은 통계청의 물가조사 품목에 포함되어 있어 값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그래서 중국집에서는 다르게 만든 자장면이라고 주장하면서 '수타 자장면','정통 옛날 맛 자장면' 등으로 이름을 붙여 비싼 값을 받는다.

거의 똑같은 자장면을 이름만 살짝 바꾸어 놓음으로써 고객들로 하여금 비싼 자장면 가격을 종전의 가격과 비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