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5월23일자 A5면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상속세제 개편 논란은 세계적으로도 '해묵은 논쟁' 중 하나다. 상속세 중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상속세가 부(富)의 집중을 막고 평등한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완화 또는 폐지론자들은 상속세가 저축과 투자활동을 저해하고 소비를 조장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 같은 양측의 주장은 유산상속권의 본질에 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속세 지지론자들은 유산을 상속하는 권리가 자연권이 아니라 시민법 또는 국내법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국가가 개인에게 수여한 것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전제 아래 상속세를 세수입 수단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상속세 폐지론자들은 재산 상속권은 자연법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권리라고 보고 있다. 국가가 임의로 박탈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 영국의 공리주의 학자들은 상속제도는 가족의 발전과 사회의 번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과세하는 것은 재산상속이라는 뛰어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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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중과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전경련이 상속세제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는가 하면,신세계는 자진해서 상속세를 1조원이나 내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게다가 삼성에서는 그 이상의 세금도 낼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정직하게 내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라는 의미로 '상속세는 바보세'로 곧잘 비유돼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엄청난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대기업의 상속세 납부실적을 보면 1355억원을 낸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 유족들이 1위에 올라있으며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 유족이 1338억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의 이병철 회장 유족은 176억원을,정주영 현대 회장 유족은 300억원만을 각각 내는데 그쳤다.

재계가 이른바 '해묵은 논쟁거리'라 할 수 있는 상속세 문제를 들고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달라진 법 규정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우선적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에 상속·증여세제가 최고세율 50%에다 상속·증여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완전포괄주의'로 개정됨으로써 그동안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던 규정들이 명확하게 정비됐을 뿐 아니라 최근의 대기업 회장 구속사건에서 알 수 있듯,정부의 법 집행의지도 예전에 비해 강력해진 게 사실이다.

현 상속세제로는 경영권 승계 불가능

재계는 국내기업 대부분의 오너 지분이 5%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속·증여세제의 완전포괄주의를 채택함으로써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최고세율 50%에 10~30%의 할증률을 더하는 현 상속세제 아래서는 막대한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인들이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어 30년 정도만 지나면 대기업의 대부분은 창업주의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은 물론 편법 상속을 초래,세수감소까지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계는 또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만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스웨덴은 이미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미국도 유산세를 영구폐지하기로 확정했다.

따라서 우리도 외국처럼 현실에 맞게 세율을 낮추거나 감면 폭을 확대하고 상속세를 소득세로 대체하거나 비상장주식의 상장 시세차익을 자본이득세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속세는 부의 집중막고 정의사회 실현

이에 대해 정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상속세 부과는 부(富)의 승계를 막아 정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또 재산권은 세금만 내면 대물림을 할 수 있지만 경영권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기업과 기업경영권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재계 총수의 2세가 경영능력이 있건 없건 경영권을 대물림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뿐 아니라 2세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받는다면 오히려 기업에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경련 등이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국제적 조류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 역시 사실의 과장이거나 의도적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소모전 아닌 발전적 논쟁의 계기돼야

상속세를 중과해야 한다는 쪽과 이를 완화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쪽 가운데 누가 옳은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양측 모두 나름대로의 명분과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각 국가별로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배경,구성원 간 합의 과정 등이 다른 만큼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상속세에 대한 모법 답안도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법치국가에서 세금을 내는 것은 의무이긴 하지만 그 세금은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돼야 하며,부의 승계 또한 땀 흘려 재산을 축적한 결과이므로 이를 단순히 세습으로 매도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회에 발전적 논쟁을 거쳐 상속세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들어 투자유치 및 기업의욕 고취 등을 위해 상속세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상속·증여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상속 증여를 받은 후 늘어난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자본이득세와 대주주 차등의결권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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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 풀이 ]

◆완전포괄(包括)주의

별도의 면세규정이 없는 한 모든 상속 및 증여 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과세 방식.과세 대상과 요건을 일일이 명시하는 열거(列擧)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도입됐다.

◆차등의결권제도

정관 등에 의해 보통주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가진 별도의 주식을 발행함으로써 대주주의 경영권 안정을 보장해주는 제도.미국 포드사의 대주주는 3.7%의 지분으로 40%의 의결권을 갖고 있으며 구글사도 최근 창업자들에게 소액주주 의결권의 10배짜리 주식을 발행했다.

◆자본이득세(資本利得稅)

자본자산의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이다.

자본자산이란 1년 이상 보유하는 주식과 채권,부동산,특허권 등이 포함되며 이들 거래에 의해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