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축가 국가대표팀을 당연히 '태극전사'라 부른다.
전사,격침,용맹,저격수….'축구'에 관한 언론 보도나 일상의 대화에도 전쟁 용어가 난무한다.
언어가 의식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볼 때 축구 용어에 깃든 호전성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축구가 전쟁 같은 의미로 각인돼 있음을 시사한다.
월드컵 승리에 대한 각국의 집념이나 결과에 따라 국민적 자존심이 출렁거리는 것도 축구가 총알 대신 둥근 공을 무기 삼고,피 대신 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병사로 삼은 국가 간 대리전이요,애국주의의 유별난 배출구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축구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
축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 할 만하다.
그 어떤 스포츠도 축구만큼 전 지구적인 열광과 영향력을 거머쥐진 못한다.
간단한 장비,단순한 규칙,골 문을 향해 돌진하는 단일한 목적의식이 대중적 인기의 기반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축구가 오늘날 세계적 인기를 얻게 된 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영국의 제국주의적·상업적 영향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당시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고 해외 진출이 매우 활발했다.
광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던 영국 엘리트들은 자신이 투자한 국가의 부유층 및 권력형 엘리트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 데 힘썼고 축구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됐다.
○축구는 곧 전쟁이다
축구는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과격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점에서도 전쟁의 속성과 닮아 있다.
'축구의 사회학'의 저자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의 리처드 줄리아노티 교수는 "축구는 특정한 지역적·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두 팀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국가 간 경합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축구 전쟁의 역사(Foofball against enemy)'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아예 국가 간 대리 전쟁으로 규정한다.
쿠퍼에 따르면 네덜란드가 독일과의 경기에 목숨을 거는 데는 나치 치하 과거사를 설욕하려는 무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국민 감정이 경기 중 난투극으로 폭발했고 결국은 양국 간 진짜 전쟁으로 비화돼 3000명의 병사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선 마라도나가 이끄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연패 끝에 맥없이 탈락했다.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패전이 탈락의 주 원인이었다.
언론이 통제된 국내에서는 패전 사실을 모르다가 월드컵 출전차 스페인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선수들은 심리적 충격으로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두 나라는 앙숙이 됐고 양국 간 경기가 펼쳐질 때면 지금도 삼엄한 경비가 깔린다.
○축구는 정치다
축구만큼 정치색이 짙은 스포츠도 드물다.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축구는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이나 폭동을 방지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로 사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이탈리아의 절대권력자 무솔리니는 1934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경제 여건상 월드컵을 치를 형편이 아니었지만 월드컵이 '파시즘'을 전 세계에 선전할 장(場)이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무솔리니는 다른 나라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빼오고,대진표를 조작해 가면서까지 1위를 위해 사력을 걸었다.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고 무솔리니는 자국의 축구 선수들을 '영웅전사'라고 띄워올렸다.
남미 여러 국가의 독재자들도 축구 우승을 인권 탄압과 경제 실패를 감추는 도구로 삼아왔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970년대 파산 지경이었지만 1978년 월드컵을 유치했고 국가 예산의 10%를 대회 준비에 쏟아부었다.
비단 독재자뿐만이 아니다.
1966년 영국 수상이었던 해롤드 윌슨은 노동당 정부의 영도 아래 우승했다고 자축했고,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1998년 파리에서 '승리한 프랑스'를 앞장서 자랑했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팩스턴은 대표 저서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국민들에게 거대한 집단적 창조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을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고 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스포츠의 이 같은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
[ 마이클 조던이 흑인 청소년을 망친다? ]
◆ 천문학적 몸값의 뒤편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 스타들은 할리우드의 대중 스타 못잖은 인기와 부(富)를 누린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의 연간 수입이 8700만달러(약 870억원)에 이르는 등 인기 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은 천문학적 액수다.
우즈의 경우 PGA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은 536만달러로,총수입의 10%가 채 안 되지만 여러 스폰서로부터 받는 지원금과 천문학적인 광고 출연료가 수입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스포츠 스타'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미국에서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빈민층 흑인 청소년들이 너도나도 신분 상승의 상징으로 여기는 조던처럼 되기 위해 농구에만 매달리게 됐고,변호사나 의사 등 미국의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진짜 노력은 등한시하게 됐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미국 프로풋볼리그(NFL) 러닝백 출신으로 명예의 전당 회원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짐 브라운은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 같은 흑인 스타들이 청소년이 근본적인 교육을 통해 감옥에 들락거리는 것을 멈추게 하고,흑인사회에 필요한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사,격침,용맹,저격수….'축구'에 관한 언론 보도나 일상의 대화에도 전쟁 용어가 난무한다.
언어가 의식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볼 때 축구 용어에 깃든 호전성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축구가 전쟁 같은 의미로 각인돼 있음을 시사한다.
월드컵 승리에 대한 각국의 집념이나 결과에 따라 국민적 자존심이 출렁거리는 것도 축구가 총알 대신 둥근 공을 무기 삼고,피 대신 땀을 흘리는 선수들을 병사로 삼은 국가 간 대리전이요,애국주의의 유별난 배출구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축구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
축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 할 만하다.
그 어떤 스포츠도 축구만큼 전 지구적인 열광과 영향력을 거머쥐진 못한다.
간단한 장비,단순한 규칙,골 문을 향해 돌진하는 단일한 목적의식이 대중적 인기의 기반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축구가 오늘날 세계적 인기를 얻게 된 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영국의 제국주의적·상업적 영향력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당시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고 해외 진출이 매우 활발했다.
광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던 영국 엘리트들은 자신이 투자한 국가의 부유층 및 권력형 엘리트들과 우호 관계를 맺는 데 힘썼고 축구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됐다.
○축구는 곧 전쟁이다
축구는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과격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점에서도 전쟁의 속성과 닮아 있다.
'축구의 사회학'의 저자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의 리처드 줄리아노티 교수는 "축구는 특정한 지역적·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두 팀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국가 간 경합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축구 전쟁의 역사(Foofball against enemy)'의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아예 국가 간 대리 전쟁으로 규정한다.
쿠퍼에 따르면 네덜란드가 독일과의 경기에 목숨을 거는 데는 나치 치하 과거사를 설욕하려는 무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국민 감정이 경기 중 난투극으로 폭발했고 결국은 양국 간 진짜 전쟁으로 비화돼 3000명의 병사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선 마라도나가 이끄는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연패 끝에 맥없이 탈락했다.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패전이 탈락의 주 원인이었다.
언론이 통제된 국내에서는 패전 사실을 모르다가 월드컵 출전차 스페인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선수들은 심리적 충격으로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포클랜드 전쟁 이후 두 나라는 앙숙이 됐고 양국 간 경기가 펼쳐질 때면 지금도 삼엄한 경비가 깔린다.
○축구는 정치다
축구만큼 정치색이 짙은 스포츠도 드물다.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축구는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이 '밑으로부터의 혁명'이나 폭동을 방지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로 사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이탈리아의 절대권력자 무솔리니는 1934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경제 여건상 월드컵을 치를 형편이 아니었지만 월드컵이 '파시즘'을 전 세계에 선전할 장(場)이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무솔리니는 다른 나라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빼오고,대진표를 조작해 가면서까지 1위를 위해 사력을 걸었다.
이탈리아는 우승을 차지했고 무솔리니는 자국의 축구 선수들을 '영웅전사'라고 띄워올렸다.
남미 여러 국가의 독재자들도 축구 우승을 인권 탄압과 경제 실패를 감추는 도구로 삼아왔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1970년대 파산 지경이었지만 1978년 월드컵을 유치했고 국가 예산의 10%를 대회 준비에 쏟아부었다.
비단 독재자뿐만이 아니다.
1966년 영국 수상이었던 해롤드 윌슨은 노동당 정부의 영도 아래 우승했다고 자축했고,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은 1998년 파리에서 '승리한 프랑스'를 앞장서 자랑했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팩스턴은 대표 저서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국민들에게 거대한 집단적 창조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을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고 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스포츠의 이 같은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해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
[ 마이클 조던이 흑인 청소년을 망친다? ]
◆ 천문학적 몸값의 뒤편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 스타들은 할리우드의 대중 스타 못잖은 인기와 부(富)를 누린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의 연간 수입이 8700만달러(약 870억원)에 이르는 등 인기 스포츠 선수들의 연봉은 천문학적 액수다.
우즈의 경우 PGA투어에서 벌어들인 상금은 536만달러로,총수입의 10%가 채 안 되지만 여러 스폰서로부터 받는 지원금과 천문학적인 광고 출연료가 수입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스포츠 스타'의 성공은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미국에서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빈민층 흑인 청소년들이 너도나도 신분 상승의 상징으로 여기는 조던처럼 되기 위해 농구에만 매달리게 됐고,변호사나 의사 등 미국의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진짜 노력은 등한시하게 됐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미국 프로풋볼리그(NFL) 러닝백 출신으로 명예의 전당 회원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짐 브라운은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 같은 흑인 스타들이 청소년이 근본적인 교육을 통해 감옥에 들락거리는 것을 멈추게 하고,흑인사회에 필요한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