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아닌 '실수'로 점수 갈린다… 일부 과목 뛰어난 상위권 학생에 불리

2008학년도부터 도입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9등급제는 상위권 학생들을 가리는 변별력에 문제가 있어 대학들이 대학별 시험의 비중을 확대할 수 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정 과목을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적당히' 잘하는 학생보다 불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유웨이 중앙교육의 이만기 평가이사는 15일 발표한 분석자료를 통해 "표준점수와 백분위 없이 9개 등급 정보만 제공되는 2008년 수능이 현재와 같이 쉽게 출제될 경우 실력보다 실수에 의해 등급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져 상위권 학생들의 학력을 제대로 측정하기 힘들다"며 "9등급제 정착을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를 많이 출제해 난이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웨이중앙교육에 따르면 2006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 중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이 동일하고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영역 총점이 같은 A학생과 B학생을 골라 2008학년도부터 시행되는 등급제 기준으로 환산했다.

그 결과 외국어와 수리에서 집중적으로 점수를 딴 B학생보다 전 과목에서 고루 고득점을 한 A학생의 등급점수가 7.5점(500점 만점 기준,언·수·외 등 주요 3개과목 각 100점,탐구영역 4과목 각 50점)이나 높았다.

B학생은 외국어와 수리의 점수가 A학생보다 높았음에도 불구 언어영역의 점수가 124점으로 1등급 커트라인인 125점에 1점 부족해 2등급을 받았다.

같은 이유로 탐구영역에서도 2과목이 2등급이됐다.

반면 A학생은 표준점수 총점이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불구 탐구영역 1개과목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1등급 커트라인 안에 가까스로 드는 '적절한 고득점'에 성공해 등급점수를 높일 수 있었다.

문제는 등급이 다른 수험생들이 실력차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2006학년도 수능의 언어영역 응시자 55만1554명중 1만363명이 1등급이었을 만큼 고득점자가 많았지만 이들의 성적이 2등급과 큰 차이가 없었다.

원점수를 기준으로 100점 만점을 받은 학생들과 2점짜리 한 문항만 틀린 학생들(원점수 기준 98점)은 1등급이 되지만 모든 문항을 다 맞고 3점짜리 한 문항을 틀린 학생들은 2등급(원점수 기준 97점)이 됐다.

실력보다는 실수 유무가 등급에 더 큰 영향을 준 셈이다.

'점수대별 학생수 분포곡선'을 보면 특히 상위권 학생들이 실력이 아닌 실수에 의해서 등급이 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영역의 경우 평균 100점을 기준으로 평균보다 높은 점수대의 학생들의 범위는 100~127점으로 27점 급간 사이에 몰려 있고 평균보다 낮은 점수대 학생들의 범위는 15~99점으로 85점 급간에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이 쉽다보니 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유웨이중앙교육의 분석이다.

이 이사는 "최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자신의 분야에 뛰어난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난이도가 낮고 등급제화된 수능은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를 선별하는 방법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봐야한다"며 "수능이 쉽게 출제되는 한 학교간 실력차를 무시한 내신과 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만으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대학은 드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내신과 수능에서 영역별 가중치를 두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면 대학들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다"이라며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수능의 변별력은 결코 낮지 않다"고 반박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