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부호,살아있는 전설,불가능을 모르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

중국 기업인들이 닮고 싶은 인물로 첫 손에 꼽는 홍콩의 화교재벌 리카싱(李嘉誠·78)을 가리키는 별칭들이다.

세계 10위의 갑부인 리카싱은 청쿵(長江)그룹과 허치슨왐포아 등을 거느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민간 항만운영사인 허치슨왐포아의 경우 세계 20개국에서 42개 항만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부산항과 광양항의 일부 운영권도 가지고 있다.

홍콩에는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 중 5센트는 리카싱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홍콩 경제에서 리카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사람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리카싱은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세계적 부호 반열에 오른 그의 성공스토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1928년 중국 차오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12세이던 1940년 전란을 피해 부모를 따라 홍콩으로 건너왔다.

1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리카싱은 불우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았다.

'사람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찻집에서 찻물을 끓이는 종업원으로 출발해 생업전선에 뛰어든 지 7년 만인 22세에 리카싱은 청쿵실업의 모태가 된 청쿵 플라스틱 공장을 세웠다.

청쿵은 우리말 장강(長江)의 광둥식 발음.장강은 우리가 잘 아는 양쯔강이다.

그는 어떤 시련에도 굴할 줄 몰랐다.

공장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환경이 갑자기 나빠졌다.

이웃한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공장 직원들은 리카싱에게 "하루빨리 사업을 접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좋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단호했다.

"새로 기계를 들여놨고 물량 주문도 받은 상태니 흔들림 없이 일하겠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운명을 바꾸는 사람이 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리카싱은 결국 그 곳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79년은 그가 세계적 화교 기업인으로 도약하는 전환기였다.

영국계 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부실덩어리였던 허치슨왐포아를 사들인 리카싱은 부실을 말끔히 털어내고 이 회사를 세계 최대 항만운영업체로 탈바꿈시켰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원칙주의자

리카싱은 중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한다.

'지독한 독서광'으로 불릴 만큼 시간을 쪼개 공부에 매달린 덕분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영어 공부를 할 만큼 노력하는 자세는 오늘날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홍콩 최대의 재벌이 된 이후에도 그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30분가량 책을 읽는다고 한다.

리카싱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시계를 20분이나 빨리 맞추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돈 3만원짜리 값싼 시계를 차고 고무 밑창을 댄 7만원짜리 구두를 신는 검소함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철저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카리브해에 있는 바하마에 컨테이너 터미널,공항,호텔,골프장 등을 건설해 많은 공헌을 하자 바하마 정부는 리카싱에게 조건 없이 카지노 사업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당한 이권을 받아 챙길 수 없다며 끝내 거절했다.

기업인으로서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운명을 바꾸겠다는 의지와 근면함,그리고 자신만의 원칙을 앞세워 리카싱은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값진 성공을 일궈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

리카싱은 허치슨왐포아를 비롯 460여개 회사와 세계 42개국에 18만명의 종업원을 둔 세계적 거상이 됐다.

이처럼 커다란 부를 쌓은 그는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리카싱은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정한 부귀(富貴)는 자기가 벌어들인 금전을 사회를 위해 쓰려는 참된 속마음에 있다"며 "한창 때에는 하루 17시간을 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과의 30% 이상을 공익활동에 할애한다"고 말했다.

그는 "27세 때 이미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었지만 사회에 관심을 갖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업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리카싱은 이런 자신의 생각을 활발한 자선활동 등을 통해 몸소 실천,홍콩인들에게 '맘씨 좋은 경제인'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의 표본이라고 평가받는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


[ 리카싱, 리콴유와 손잡고 해외 항만 운영권 협력 ]

세계 최대 항만운영업체인 허치슨왐포아는 지난달 싱가포르의 항만운영업체인 PSA와 손을 잡았다.

PSA는 싱가포르 국영 투자사인 테마섹 홀딩스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업체로 세계 11개국 19개 항만을 운영하고 있다.

테마섹 홀딩스는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의 며느리인 호칭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따라서 리카싱과 리콴유가 손을 잡은 셈이다.

중국 화교 사회는 크게 광둥,푸지엔,차오저우,객가 등 4대 파벌로 나뉜다.

리카싱은 대표적인 차오저우 상인으로 차오저우 출신 화상 인맥을 상징한다.

반면 리콴유는 대표적인 객가다.

객가는 중국 중원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중국 남부 지방으로 이주한 일족들이다.

광둥 등 남부에 둥지를 튼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따라서 이들을 화교의 원조로 보며 '화교 중의 화교'라고 부른다.

객가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에 힘썼으며 이를 바탕으로 특히 정치 엘리트를 많이 배출했다.

신중국의 아버지 손문,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대만의 리덩후이 전 총통,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등이 모두 객가 출신이다.

허치슨왐포아와 PSA의 결합은 국가별로는 홍콩과 싱가포르가,화교 파벌로는 차오저우 상인과 객가가 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회사는 이번 협력으로 해외 항만 운영권 인수과정에서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는 효과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