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에 이어 세계 2위 소매업체인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까르푸는 1996년 국내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그 해 7월 부천에 1호점을 열었다.

국내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철수하는 셈. 까르푸에 이어 한국에 들어온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와 KFC 등도 국내 업체에 밀려 떠날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외국 업체들이 유독 한국시장에서 고전하는 原因은 무엇일까.

여러 원인을 들 수 있지만 한마디로 現地化의 실패로 요약할 수 있다.

진출한 나라의 市場과 소비자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우선 까르푸의 일본 철수 사례부터 알아보자.


○까르푸의 일본 철수

월마트와 달리 까르푸는 일찌감치 아시아 각국 시장 진출을 서둘렀다. 덕분에 현재 대만과 중국에서는 할인점 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KO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차이는 아시아 각국 유통시장과 消費문화가 다른 데 기인한다.

일본에서는 2000년 까르푸가 진출했을 당시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저가형 대형 소매업체들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업체는 까르푸 방식의 하이퍼마켓형 점포가 아니라 양판점(GMS) 영업만 수십년간 지속해왔다. 양판점과 하이퍼마켓 간 결정적 차이는 제조업체와 직거래하느냐 여부다.

하이퍼마켓의 힘은 제조업체와의 直去來를 통한 저가격이다. 그런데 일본의 대형 제조업체들은 직거래 방식을 거부했다. 중간 도매법인을 거치는 일본 특유의 상거래 관행 때문이다. 기대했던 직거래가 어려워 상품 調達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 정책이 불투명했다. 까르푸가 2000년 12월 지바현에 첫 점포를 열었을 때 같은 외국업체인 코스트코까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까르푸는 상품전략에서도 실패했다. 처음엔 현지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일본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외국 상품은 단지 10%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풍부한 유럽산 상품을 기대했던 일본 소비자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까르푸는 뒤늦게 상품전략을 전환하고 유럽산,특히 프랑스 제품을 특별 매대에 陳列했으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까르푸는 첫 점포를 연 지 2년이 지나서야 네 번째 점포를 오픈할 정도로 출점 속도도 느렸다.

전략의 蹉跌을 알아차린 까르푸는 네 번째 점포부터 상품진열 방법을 바꾸기도 했다. 여느 일본 슈퍼매장처럼 한 곳에 신선식품을 모으고 유기농 코너도 신설했으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까르푸는 하이퍼마켓을 지향했지만 결국 40년간 형성된 일본 전통 양판점 업태와의 차별화도 보여준 게 없었다. 2005년 3월 까르푸는 일본 내 점포 9곳을 일본 유통업체 이온그룹에 넘기고 일본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까르푸의 한국 철수

까르푸가 우리나라에 첫 점포를 연 것은 1996년 7월30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신도시 당시 LG백화점 바로 옆에서다. 초기 4년간은 이마트에 이어 2위를 固守했다. 그러나 뒤늦게 追擊의 고삐를 죄기 시작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 잇따라 덜미를 잡히면서 이내 4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까르푸의 추락은 지나친 까르푸 문화 고수에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한국 고유의 소비문화를 배려하지 않는 옹고집 탓이었다는 얘기다. 1호점 개점식 때 보인 벽안의 한국까르푸 사장의 행태는 실패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비쳐진다.

당시 중동점 현관 개점식에서 프랑스인 사장은 지역 유지들과 부녀회 간부,언론사 기자들을 면전에 세워놓고 통역도 없이 연설한 뒤 매장을 한바퀴 돌고 사라졌다. 매장에 대한 설명도,고객에 대한 애착도 보이지 않는 태도였다.

매장구성과 조직문화도 철저히 프랑스 본사의 매뉴얼을 고수했다. 멋없이 널따랗게 만든 고객 이동통로,품질이 떨어지는 비식품류 제품,안내 직원은 물론 안내판 조차 없는 매장…. 거기다가 점장과 본사 간부를 대부분 프랑스인으로 중용하다 보니 소비자 반응을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저가격 정책을 무리하게 적용하다 보니 納品업체들의 불만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납품업체들은 매장에 들어가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미에서 론칭비를 내고 광고선전비도 부담해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으나 까르푸는 수긍하지 않았다. "증거를 대보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할인점의 납품업체 부담전가 행위는 문서가 남지 않는다. 증인으로 나서야 할 납품업체들은 거래가 끊기는 게 두려워 증언을 회피했다. 법정에서 까르푸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고 더욱 기고만장해 갔다. 까르푸는 뒤늦게 店長들을 한국인으로 대거 교체하고 약국,서점,문화센터 등 편의시설을 갖추는 등 한국 소비문화에 맞추려고 노력했으나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시장 철수는 까르푸로 끝날 것인가?

현지화에 실패한 업체나 상품은 언제든지 退出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철수 행진은 까르푸만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최대 식품회사인 네슬레는 모유를 중시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지 못해 이미 2004년 분유와 이유식 시장에서 '세레락 사업'을 접은 적이 있다. 마요네즈 브랜드인 베스트푸드도 토종업체 오뚜기의 필사적인 시장 사수 노력에 밀려 결국 한국 진출 15년 만인 1996년 물러났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맥도날드 KFC 코카콜라 등도 경영전선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맥도날드는 1988년 국내 진출 후 승승장구했으나 2003년 이후 내리막 길이다. 2002년 2800여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연매출이 1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 점포 수도 349개에서 2003년 341개로 줄었다. 광우병 파동의 영향이 큰 측면도 있지만 상품을 한국인 입맛에 맞추지 못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치킨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KFC도 한국에서만은 예외다. 토종 브랜드인 BBQ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물론 2위 교촌치킨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 BBQ가 세계 처음으로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로 튀김한 '올리브유 치킨'을 내놓으면서 KFC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KFC는 한국에서 선두는커녕 중소 브랜드 중 하나로 전락할 처지다. KFC가 외식시장에 은밀히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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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읽기

ㆍ原因(원인)
ㆍ市場(시장)
ㆍ現地化(현지화)
ㆍ消費(소비)
ㆍ直去來(직거래)
ㆍ調達(조달)
ㆍ陳列(진열)
ㆍ蹉跌(차질)
ㆍ固守(고수)
ㆍ追擊(추격)
ㆍ納品(납품)
ㆍ店長(점장)
ㆍ退出(퇴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