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선수단은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에 걸린 8개의 금메달 중 6개를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시원한 '바깥 돌기' 역전극을 펼치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은 동계 올림픽 기간 내내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쇼트트랙 대표팀이 남녀 구분 없이 파벌에 따라 훈련하는 등의 파행은 그 기쁨에 묻혀 잠시 잊혀졌다. 심지어는 파벌 간 경쟁구도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동계올림픽에서의 한국 쇼트트랙 선수단의 선전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시 '파벌 싸움'의 먹구름이 찾아 들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쇼트트랙 선수단이 귀국하는 자리에서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3관왕 안현수 선수 아버지가 대회 중 상대 파벌 선수가 안현수의 경기를 고의적으로 방해했다며 대한빙상경기연맹 간부와 주먹질을 벌인 것이다.

상대 파벌의 코치가 자기측 선수들에게 '안현수의 진로를 막으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쇼트트랙계 내부의 파벌싸움이 어린 선수들의 꿈을 멍들게 하는 것은 물론 많은 국민에게도 큰 당혹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안현수는 "스케이트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파벌 싸움이) 심각하다"며 "앞으로 운동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더는 힘들어지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은 바 있다.


힘 있는 파벌이 국가대표 선발 좌지우지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파벌싸움은 쇼트트랙만의 일이 아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이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낸 바 있는 탁구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오는 4월24일부터 열리는 '2006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코앞에 닥쳤는데도,회장파와 반회장파로 갈려 싸움을 거듭하고 있다. 두 세력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선수 선발을 놓고도 자기편 선수들을 많이 집어 넣으려고 갈등을 빚었었다.

아테네 올림픽 여자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핸드볼도 2002년부터 경희대파와 한체대파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펜싱 종목에서도 한체대 출신인 이성우 대표팀 코치를 비한체대파 협회 집행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임하는 소동을 겪었다. 프로농구를 운영하는 KBL에서도 연세대파와 고려대파로 나뉘어 사사건건 대립이 벌어진다.

스포츠계의 파벌 싸움은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인 종목일수록 대표 선발을 놓고 벌어지는 암투가 더욱 치열하다. 대표 선수로만 뽑히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힘 있는 특정 파벌이 대표 자리를 독식하는 것은 해당 파벌에 속하지 못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다. 페어플레이를 최고 가치로 여기고 오직 경기력만으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스포츠계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무너진 신뢰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우선

2002년 월드컵 때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은 선수 선발에서 학연 지연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을 기준으로 선수를 뽑아 우리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놨다.

히딩크가 오기 전까지는 축구계에서도 암암리에 대표팀 감독?코치의 학연에 따라 선수가 선발되는 문제점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를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전권을 맡기는 방식으로 일거에 해소한 것이다. 외국인 감독이 필요했던 이유도 바로 국내의 치열한 파벌 싸움때문이었다는 말이다.

축구의 경우를 쇼트트랙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코치를 대체할 만한 외국인 코치도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파벌을 중심으로 훈련 캠프를 만드는 방식은 절대 안된다는 지적도 많다.

일단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을 대표팀 코치로 선임하고 파벌에 관계없이 모여서 훈련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과도기적 조치로 대표팀 전체가 모두 모여 훈련하는 합동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쌍방 간에 무너져 있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믿을 수 없다는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그 어떤 대안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 빙상계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