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불법 이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새 이민법 제정을 놓고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저가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우수 해외 두뇌 영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의견과 국가 안보,범죄 예방을 위해 이민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지난 3월27일 미 상원의 이민법 심의를 계기로 '반(反) 이민법' 제정에 격앙된 시위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이민제도 개혁 논의

논란이 되고 있는 반(反) 이민법의 정식 명칭은 '국경보호 테러방지 불법이민 통제법'이다.

제임스 센센브르너 하원의원이 제안했다고 해서 '센센브르너법'으로 불린다.

이 법은 작년 하원에서 통과됐다.

불법 이민자를 형사범으로 간주하고 불법 체류자를 지원하는 사람이나 기업주,종교단체 등도 함께 처벌하도록 하는 강도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

상원에는 이 밖에 △불법 체류자가 본국으로 돌아가 임시 노동비자를 받고 재입국할 수 있도록 한 '코닌-카일 법안'△임시 노동카드를 받고 6년 동안 일한 불법 체류자에게는 영주권을 주자는 '케네디-맥케인 법안' 등이 제출돼 있다.

◆이민 사회의 거센 반발

남미와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한 이민 사회는 반 이민법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LA에서 열린 반대 집회에는 안토니오 바이라이고사 LA시장도 참석,시위대에 지지를 보냈다.

한인 사회도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이민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것은 반 이민법의 엄청난 파장 때문이다.

작년 3월 말 현재 미국 내 불법 체류자는 11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 불법 체류자는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이 미국에서 나은 자녀 300만명은 부모와 생이별해야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들을 도와준 사람들도 처벌받는다.

식구나 친지 중 한 명이 불법 체류자라면 이들과 관련될 수밖에 없는 합법적 이민자라도 범죄자가 되고 만다.

문제는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에서 추방당할 경우 미국 경제가 곧바로 무너질 것이란 말이 나올 만큼 이들의 미국 경제 기여도는 크다.

백인이나 흑인은 물론 합법 체류자마저 꺼리는 온갖 허드렛일을 맡고 있다.

도로공사,주택건설,잔디관리,파인애플 및 딸기 수확,음식점 설거지와 청소 등 온갖 막노동은 이들의 몫이다.

신분상 제약 때문에 의료보험이나 연금 등 아무런 합법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시간당 5~6달러의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1110만명의 불법 체류자 중 725만명은 각종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 전체 근로자 1억4860만명의 4.9%에 달하는 숫자다.

대부분 서비스업(31%)이나 건설(19%),각종 수리(15%) 및 운송 관련 업종(8%)에서 일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이삿짐센터나 조경,건설 관련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대부분 히스패닉으로 불리는 남미계 불법 체류자들이다.

◆정치권도 힘겨루기

미 정부와 재계는 이들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조차 "(불법) 이민자들이 경제에 필수적"이라며 "임시 노동허가증을 발급해 최장 6년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초청근로자(Guest Worker)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이민법 개혁에 침묵해온 민주당 지도부도 이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센센브르너법은 문자 그대로 선량한 사마리아인은 물론 예수님조차 범죄인으로 취급하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반면 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이민제한파'는 이들로 인해 국경안보가 소홀해지고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거환경은 물론 교육여건도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 정가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2008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상황을 고려하면,이민법에 대한 결론이 쉽게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