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인색하다고 말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절약하라는) 회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
세계 최대 조립가구회사 이케아의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80).그는 세계 4위 갑부지만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구두쇠다.
주말에는 15년 된 구닥다리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비행기를 탈 때는 제일 싼 이코노미석만 고집한다.
쇼핑을 할 때도 동네 슈퍼에서 주말 할인 행사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의 저택도 대중적이며 값싼 이케아 가구로 장식돼 있을 뿐이다.
그가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 스위스에 사는 것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캄프라드는 이케아 직원들에게 항상 절약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 회사 직원들은 이면지 사용을 강요받는다던데…"라는 질문을 받자 "그게 어때서? 나도 이면지를 사용한다"고 응수했다.
모든 직원들이 절약을 실천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부터 솔선수범한다는 것.
그는 이 같은 구두쇠 경영의 배경에 대해 "이케아 그룹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진출을 위해 우리가 버는 모든 것은 유보금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80세를 맞는 것이 두렵지 않다"며 "죽을 시간이 없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쿠루지 영감'처럼 인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이케아는 서유럽에서 사회 기여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캄프라드는 최근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스위스 로잔 예술학교에 50만프랑(3억7000만원)을 기부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소유주이지만 지금은 공식 직함이 없다.
1986년 이케아 그룹 회장에서 은퇴한 뒤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그의 세 아들이 이케아에서 일하고 있다.
◆'박리다매'로 키운 이케아
캄프라드가 이케아를 세운 것은 17세 때인 1943년.학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자 아버지가 약간의 '상금'을 줬고 그는 이 돈으로 이케아(IKEA)를 세웠다.
회사 이름은 자신의 이름(Ingvar Kamprad)과 자라난 농장(Elmtaryd),지역(Agunnaryd)의 머리 글자를 따서 지었다.
처음에는 그저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다.
파는 물건도 볼펜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따위의 잡동사니였다.
하지만 그는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는 감각과 새로운 것을 향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주택 1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우연찮게 한 종업원이 테이블 다리를 뜯어 차에 집어 넣는 모습을 보고 소비자들이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조립식 가구를 생각해냈고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가의 가구를 살 엄두를 못 내던 사람들에게 신개념 가구 매장을 선보인 것.
조립식 가구는 수송과 보관이 쉬울 뿐 아니라 판매 공간도 적게 차지해 여러모로 유리했고 캄프라드의 사업은 빠른 속도로 번창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요약된다.
싸게 많이 팔면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고 그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믿고 대형 매장을 잇따라 연 게 주효했다.
이케아는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 202개 매장,9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77억달러에 달했다.
해마다 이케아 점포를 찾는 방문객은 약 4억5000만명을 넘는다.
고객들에게 배포하는 상품 카탈로그는 연간 1억6000만부로 유럽에서는 '이케아 카탈로그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마케팅 전략도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케아에 열광하는 이유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지난해 이케아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7000가지가 넘는 각종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이 전시된 이케아 매장을 돌면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세련되고 값싼 제품을 일괄 구매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구두쇠라는 세간의 평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케아를 세계 최대의 조립가구 회사로 키워냈지만 그에게도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10대 시절 네오(neo)나치 그룹에 들어가 활동한 전력이 그것.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1994년 직원들에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당시 일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절약하라는) 회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럽다."
세계 최대 조립가구회사 이케아의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80).그는 세계 4위 갑부지만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구두쇠다.
주말에는 15년 된 구닥다리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비행기를 탈 때는 제일 싼 이코노미석만 고집한다.
쇼핑을 할 때도 동네 슈퍼에서 주말 할인 행사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의 저택도 대중적이며 값싼 이케아 가구로 장식돼 있을 뿐이다.
그가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 스위스에 사는 것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캄프라드는 이케아 직원들에게 항상 절약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 회사 직원들은 이면지 사용을 강요받는다던데…"라는 질문을 받자 "그게 어때서? 나도 이면지를 사용한다"고 응수했다.
모든 직원들이 절약을 실천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부터 솔선수범한다는 것.
그는 이 같은 구두쇠 경영의 배경에 대해 "이케아 그룹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진출을 위해 우리가 버는 모든 것은 유보금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80세를 맞는 것이 두렵지 않다"며 "죽을 시간이 없다"고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스쿠루지 영감'처럼 인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의 최대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이케아는 서유럽에서 사회 기여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캄프라드는 최근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스위스 로잔 예술학교에 50만프랑(3억7000만원)을 기부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덤에는 단 한 푼도 갖고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소유주이지만 지금은 공식 직함이 없다.
1986년 이케아 그룹 회장에서 은퇴한 뒤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그의 세 아들이 이케아에서 일하고 있다.
◆'박리다매'로 키운 이케아
캄프라드가 이케아를 세운 것은 17세 때인 1943년.학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자 아버지가 약간의 '상금'을 줬고 그는 이 돈으로 이케아(IKEA)를 세웠다.
회사 이름은 자신의 이름(Ingvar Kamprad)과 자라난 농장(Elmtaryd),지역(Agunnaryd)의 머리 글자를 따서 지었다.
처음에는 그저 용돈벌이나 할 생각이었다.
파는 물건도 볼펜이나 크리스마스 카드 따위의 잡동사니였다.
하지만 그는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는 감각과 새로운 것을 향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주택 1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우연찮게 한 종업원이 테이블 다리를 뜯어 차에 집어 넣는 모습을 보고 소비자들이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조립식 가구를 생각해냈고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가의 가구를 살 엄두를 못 내던 사람들에게 신개념 가구 매장을 선보인 것.
조립식 가구는 수송과 보관이 쉬울 뿐 아니라 판매 공간도 적게 차지해 여러모로 유리했고 캄프라드의 사업은 빠른 속도로 번창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요약된다.
싸게 많이 팔면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고 그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믿고 대형 매장을 잇따라 연 게 주효했다.
이케아는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 202개 매장,9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77억달러에 달했다.
해마다 이케아 점포를 찾는 방문객은 약 4억5000만명을 넘는다.
고객들에게 배포하는 상품 카탈로그는 연간 1억6000만부로 유럽에서는 '이케아 카탈로그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마케팅 전략도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케아에 열광하는 이유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지난해 이케아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7000가지가 넘는 각종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이 전시된 이케아 매장을 돌면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세련되고 값싼 제품을 일괄 구매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구두쇠라는 세간의 평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케아를 세계 최대의 조립가구 회사로 키워냈지만 그에게도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10대 시절 네오(neo)나치 그룹에 들어가 활동한 전력이 그것.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1994년 직원들에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당시 일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