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도입하려는 새로운 노동 법안에 대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학생과 노동계는 지난 18일 정부에 '고용주가 26세 미만 직원을 채용하면 첫 2년간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CPE(최초 고용계약)를 철회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민주적으로 표결된 공화국 법률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며 노동법 강행 의지를 밝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CPE는 청년 실업을 줄이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빌팽 총리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노동계와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오는 28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나시옹 광장 시위에서 부상한 한 노조원이 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학생시위로 시작된 프랑스 소요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온 학생 시위
프랑스의 학생 시위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1968년 혁명이 있은 지 약 20년 후인 1986년부터 20년간 4~5년마다 주기적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68년 혁명 때는 시위대가 한때 1000만명에 이르렀다.
1986년엔 알랭 드바케 교육장관이 대학 개혁 법안을 내놓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서 저항하기도 했다.
4년 뒤 리오넬 조스팽 교육장관의 개혁 시도에 반발하는 고등학생들은 파리에서 10만여명이 운집했고,1994년엔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최저임금법안(CIP)에 수십만명이 맞서 결국 정부는 CIP를 포기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 대권을 꿈꾸던 발라뒤르는 학생 시위에 이어 다른 부정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이듬해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1999년 가을엔 클로드 알제그르 장관이 대학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다 학생 시위를 초래했으며,2003년에는 뤽 페리 교육장관이 대학 재정 자율화 계획을 추진하다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물러나야 했다.
지난해엔 프랑수아 피용 교육장관이 대학 입학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개혁하려다 학생들의 반발에 밀려 포기했다.
◆위기에 빠진 빌팽 총리
이번에는 빌팽 총리가 취임 10개월 만에 학생 시위로 밀려날 위기에 봉착했다.
CPE가 예정대로 시행돼 수개월 내에 성과를 내지 않는 한 빌팽 총리는 심각한 고초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AFP통신은 최근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빌려 "빌팽 총리가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청년실업 정책으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학생 시위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고,취임 10개월 만에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2007년 대선에 나서려는 그의 야망뿐만 아니라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조차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빌팽 총리는 새 노동 법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밝히고 있는 만큼 CPE가 철회될 경우 그의 퇴진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CPE가 예정대로 도입돼 수개월 내에 기대했던 성과를 얻는다면 빌팽 총리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이 경우에도 청년들의 반발을 초래한 후유증은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 목표만 있는 학생 시위
최근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1968년 혁명 당시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상황과 외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개혁'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젊은층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보다는 한번 구한 직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을 지키려는 '안정 추구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 구호에도 고용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만 있을 뿐 체제 개혁을 비롯한 진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38년 전 68혁명을 주도했던 다니엘 콩방디는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시위를 벌였지만,지금은 변화에 두려워하며 방어적인 시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 시위가 이데올로기형에서 현실주의형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소요사태는 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복지국가들의 '사회제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 등 상당수 유럽국가들이 '고용 및 해고에 대한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고용의 유연성'을 늘려가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프랑스 소요사태는 유럽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개혁의 흐름을 강화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학생과 노동계는 지난 18일 정부에 '고용주가 26세 미만 직원을 채용하면 첫 2년간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CPE(최초 고용계약)를 철회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민주적으로 표결된 공화국 법률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며 노동법 강행 의지를 밝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CPE는 청년 실업을 줄이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빌팽 총리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노동계와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오는 28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나시옹 광장 시위에서 부상한 한 노조원이 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학생시위로 시작된 프랑스 소요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강력한 힘을 발휘해온 학생 시위
프랑스의 학생 시위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1968년 혁명이 있은 지 약 20년 후인 1986년부터 20년간 4~5년마다 주기적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68년 혁명 때는 시위대가 한때 1000만명에 이르렀다.
1986년엔 알랭 드바케 교육장관이 대학 개혁 법안을 내놓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서 저항하기도 했다.
4년 뒤 리오넬 조스팽 교육장관의 개혁 시도에 반발하는 고등학생들은 파리에서 10만여명이 운집했고,1994년엔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최저임금법안(CIP)에 수십만명이 맞서 결국 정부는 CIP를 포기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 대권을 꿈꾸던 발라뒤르는 학생 시위에 이어 다른 부정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이듬해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1999년 가을엔 클로드 알제그르 장관이 대학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다 학생 시위를 초래했으며,2003년에는 뤽 페리 교육장관이 대학 재정 자율화 계획을 추진하다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물러나야 했다.
지난해엔 프랑수아 피용 교육장관이 대학 입학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개혁하려다 학생들의 반발에 밀려 포기했다.
◆위기에 빠진 빌팽 총리
이번에는 빌팽 총리가 취임 10개월 만에 학생 시위로 밀려날 위기에 봉착했다.
CPE가 예정대로 시행돼 수개월 내에 성과를 내지 않는 한 빌팽 총리는 심각한 고초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AFP통신은 최근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빌려 "빌팽 총리가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청년실업 정책으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학생 시위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고,취임 10개월 만에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2007년 대선에 나서려는 그의 야망뿐만 아니라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조차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빌팽 총리는 새 노동 법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밝히고 있는 만큼 CPE가 철회될 경우 그의 퇴진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CPE가 예정대로 도입돼 수개월 내에 기대했던 성과를 얻는다면 빌팽 총리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이 경우에도 청년들의 반발을 초래한 후유증은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 목표만 있는 학생 시위
최근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1968년 혁명 당시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상황과 외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개혁'이라기보다는 '현실적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젊은층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보다는 한번 구한 직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을 지키려는 '안정 추구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 구호에도 고용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만 있을 뿐 체제 개혁을 비롯한 진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38년 전 68혁명을 주도했던 다니엘 콩방디는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시위를 벌였지만,지금은 변화에 두려워하며 방어적인 시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 시위가 이데올로기형에서 현실주의형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소요사태는 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복지국가들의 '사회제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 등 상당수 유럽국가들이 '고용 및 해고에 대한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고용의 유연성'을 늘려가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프랑스 소요사태는 유럽 역사의 물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개혁의 흐름을 강화하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