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민주주의 왜 흔들리나-태국] 탁신 총리 자신이 비리로 '족쇄'

태국의 경제구조는 필리핀과 비슷하다.


농업과 경공업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소수의 지주들이 전국 대부분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는 언제나 부정부패가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다.


끊임없는 쿠데타와 정쟁(政爭)으로 혼란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세력들은 언제나 생겨난다.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는 "부패 척결과 빈곤 추방,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우며 국민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지난해 2월 재집권에 성공하며 탁신 정부는 태국에서는 처음으로 4년 임기를 채운 첫 정권이자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최초의 정권이 됐다.


그러나 탁신은 그 자신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다 언론탄압 정책은 그를 국민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탁신


탁신 총리에 대한 태국 국민의 신뢰는 경제분야 업적에서 비롯됐다.


그는 기업인 출신으로 국정에 기업식 경영 개념을 시도한 태국 최초의 총리다.


아시아 통화 위기의 진원지였던 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예정보다 2년 앞당긴 2003년 졸업했고,2003~2004년 경제성장률도 6.5%를 웃돌아 남아시아 5개국 중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군부 쿠데타가 빈번했던 태국에서 2001년 선거를 통해 최초로 총리에 오른 탁신 총리는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의료비 감면 및 부채 탕감 등 파격적인 정책과 태국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이 저소득층에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다.


◆부패 문제로 위기 봉착


그러나 탁신 총리는 각종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중산층과 지식인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탁신 가족이 소유한 주식의 매각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불만은 가중됐다.


자녀들과 처남 다마퐁 등 탁신 가족이 소유한 태국 최대 재벌기업 '친그룹' 지분 49.6%를 싱가포르 국영투자기관 '테마섹홀딩스'에 매각하면서 엄청난 시세 차익을 챙겼으며 이 과정에서 내부 거래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태국 국민은 국가의 주요 회사를 외국에 팔아넘긴 점과 태국 네 번째 부자로 알려진 탁신 총리가 이번 거래로 19억달러(약 1조8500억원)의 이익을 챙겼으면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탁신 가족은 조세 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지주회사 '앰플리치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지분을 매각,세금을 피해가는 편법을 사용했다.


여기에 최근 태국증권거래위원회가 "2000년 12월 탁신 총리로부터 아들 판통태가 친그룹의 지분을 승계받은 후 공시하지 않았으며 25%를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했음에도 의무 공개매입 조항을 위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언론과 갈등 심화


언론과의 대결은 탁신 총리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지난해 언론인 손디 림통쿤이 자신이 진행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탁신 정권을 맹비난하면서 시작된 언론과의 대립은 탁신 총리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면서 권력과 언론 간의 긴장이 전쟁 수준으로까지 치달았다.


외신들은 "손디 림통쿤의 지지 세력이 도시 중산층에서 학생 운동권과 탁신 총리의 이전 정치연대세력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탁신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잠롱 스리무앙 전 방콕시장까지도 탁신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제 성적도 초라해지고 있다.


민생 경제는 계속 뒷걸음질치고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무역적자만 72억여달러로 9년여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경제 성장률도 4년 만에 최저치인 4%대로 떨어졌다.


최근 방콕의 수언 두싯 라자밧 대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태국 정치 신뢰지수'는 94.05로 전달보다 3.58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난해 4월 첫 조사 이후 최저치다.


탁신 총리의 국정수행에 대한 신뢰도 역시 전달에 비해 5.35포인트나 떨어지며 101.34에 그쳤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