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변화의 키워드는 정부 중심에서 민간중심으로,정부의 보호에서 치열한 경쟁체제로 일본 사회를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전통적인 유교식 사회구조를 미국식 경쟁구조로 바꾼다는 것이 일본이 추구하는 변화의 골자다.

작은 정부가 아닌 큰 정부를 지향하고 학생들은 모두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고 경쟁보다는 보호를 추구하는 최근의 우리나라와는 매우 대비되는 행보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한자성어는 비단 한국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었다.

관료주의로 대표되는 일본의 공공부문은 복지부동에서 만큼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본 정부는 이제 군살을 빼고 민간의 경쟁체제를 도입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대학은 상아탑을 벗어나 기술자를 공급하는 기지로 변모하고 금융계도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낡은 틀이 깨지고 있는 일본의 생생한 현장을 들여다보자.

◆'작은 정부'로 승부

도쿄의 부도심인 시나가와(品川) 전철역 앞에는 '헬로워크(Hello work) 캐리어 플라자'라는 재취업 교육 전문기관이 있다.

하루 200~300명의 구직자가 찾는다는 이곳은 작년 6월까지만 해도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이만(JMAN)이란 민간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부 행정 서비스를 민간에 시범 개방한 데 따른 것이다.

캐리어 플라자의 이다 시로 소장은 "정부가 운영할 때보다 비용은 30% 이상 줄고 구직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다"고 자랑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65만명에 달하는 국가 공무원을 향후 5년간 5% 이상 줄일 방침이다.

공룡에 비견되던 최대 공기업인 우정공사(우리나라의 정통부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조직)도 신규 채용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현재 26만명인 직원을 10년 뒤엔 19만명으로 크게 줄이기로 했다.

지방자치 단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지자체의 재정 건전화와 행정 효율화를 위해 지자체 간 합병을 유도하는 특례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2001년 3227개였던 지자체는 현재 1821개로 줄었다.

◆기술 공급 기지로 변신하는 대학

129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최고 명문 도쿄대.콧대 높은 도쿄대가 1877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미국 매킨지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교직원의 행정업무 중 30%는 쓸데 없으니 없애야 한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왔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은 임기가 끝나는 2009년 3월까지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도쿄대가 비상사태에 돌입한 것은 2004년 4월 정부가 전국 89개 국립대학을 동시에 '법인화'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국가기관이었던 대학을 민간 단체처럼 독립적으로 경영하도록 한 조치가 바로 법인화다.

법인화 효과는 당장 산학협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연구 성과가 특허 출원돼 기업에 전수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쿄대의 경우 기술 이전 건수가 2000년 7건에서 2004년 45건으로,기술 이전료는 4200만엔에서 24억9100만엔으로 증가했다.

◆환골탈태한 금융산업

도쿄 신주쿠역 히가시구치(東口)에 있는 스미토모 미쓰이은행 지점.안내판에는 '쉬는 날에는 은행에 간다.

주택 관련 대출과 자산운용 상담은 토요일과 공휴일에도 가능'이란 말이 적혀 있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은행원들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공격적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일본의 금융회사들은 그야말로 '안전 제일주의'였다.

1990년대 초반 거품 경기가 붕괴되고 부실이 쌓이면서 공격적 영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부실은 대부분 털어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금융회사 간 '짝짓기'도 잇따랐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대표적이다.

최근 도쿄미쓰비시은행과 UFJ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이 은행은 자산 기준으로 미국의 씨티그룹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떠올랐다.

도쿄=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