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장기 불황 속에서도 제조업만은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아니,어쩌면 불황 속에서 더 강해졌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일본 경제가 부활하면서 10년 불황을 이겨낸 ‘일본식 경영’의 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일본 기업의 저변에 깔려 있는 고유의 DNA(유전자)말이다.
◆노사 합의로 위기 돌파
일본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본제철.1987년 6만명에 달하던 직원이 엔(円)고 여파와 1990년대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지금은 2만명으로 줄었다.
강제 해고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전 직원의 3분의 2를 자연 감소시킨 비결은 간단하다.
정년퇴직(60세)으로 인원이 감소하길 기다리면서 신규 채용을 중단한 것이다.
여기에다 적(籍)은 본사에 두고 근무는 협력사 등에서 하는 슈코(出向)를 통해 서서히,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직을 유도했다.
물론 경영진도 스스로 임금을 깎았다.
스즈키 마사토 홍보과장은 "구조조정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회사측의 진지한 노력에 노조도 동의했고 노사 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아예 "종업원 목을 자르려면 경영자가 할복하라"(오쿠다 히로시 회장)고 할 정도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도요타 노조는 대신 56년째 무파업 원칙을 고수하며 생산성 향상에 힘쓴다.
◆'Down to us!'(우리에게 내려왔다)
경제학을 전공한 주바치 료지 소니 사장은 생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공학도 출신이다.
그는 작년 6월 부임한 직후 세 가지 핵심 전략을 발표했다.
고객 관점의 경영과 기술 차별화,그리고 현장이었다.
그는 "작은 헤드쿼터(사령부)와 강한 현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부임 후 8개월간 일본과 미국 중국 등지의 공장 9곳을 직접 방문했다.
책상에 앉아 보고를 받는 다른 사장들과 달리 생산라인에서 직접 근로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공장뿐만 아니라 아키하바라(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상가)를 찾아 판매직원도 독려했다.
'소니를 살릴 아이디어 내보라'는 그의 제안에 직원들은 2000건이 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주바치 사장의 현장 방문에는 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도 자주 동행한다.
최근 수년간 과거의 명성을 잃고 휘청거렸던 소니는 작년 4분기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1689억엔의 순익을 냈다.
◆불황 속에서 감행한 장기 투자
일본의 대표적 하이테크 기업인 교세라가 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5년이었다.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였다.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
당시 태양전지는 인공위성과 같은 '국책 사업'에만 쓰였다.
가격이 워낙 비싸 일반인은 꿈도 못꿨다.
개발 과정에서도 가격을 낮추면 성능이 떨어지고 성능을 높이면 가격이 올라가는 딜레마가 반복됐다.
1982년 가까스로 양산에 들어갔고 93년에야 비로소 대당 600만엔의 주택용 태양전지를 선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장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은 개선될 조짐이 없었다.
결국 30년 가까이 적자 행진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설비 투자와 기술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200만엔대 고성능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때마침 경기가 호전되고 전 세계적으로 태양전지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지금은 수요를 따라가기도 벅찬 형편이다.
◆사라지지 않은 장인정신
도쿄 인근 이바라기현 모리야시에 위치한 마에카와 제작소.도쿠나가 노부오씨(69)는 거푸집(부품을 찍어내는 틀) 제작 전문가다.
그는 4년 전쯤 신제품을 내놨다.
원래 주형 재료인 모래를 굳게 하려면 경화제(硬化劑) 등 화학물질을 써야 하지만 그는 물을 넣은 뒤 영하 40도에서 동결시키는 방법을 선보인 것."얼음이 녹으면서 주형이 자연 붕괴되기 때문에 먼지나 소음이 적을 뿐만 아니라 원료(쇳물) 손실도 크게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쿠나가씨 같은 사람을 일본에선 쇼쿠닌(職人)이라고 부른다.
나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스스로 최고를 지향하는 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는 쇼쿠닌 양성 제도에 미래를 거는 곳이 많다.
도쿄=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노사 합의로 위기 돌파
일본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본제철.1987년 6만명에 달하던 직원이 엔(円)고 여파와 1990년대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지금은 2만명으로 줄었다.
강제 해고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전 직원의 3분의 2를 자연 감소시킨 비결은 간단하다.
정년퇴직(60세)으로 인원이 감소하길 기다리면서 신규 채용을 중단한 것이다.
여기에다 적(籍)은 본사에 두고 근무는 협력사 등에서 하는 슈코(出向)를 통해 서서히,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직을 유도했다.
물론 경영진도 스스로 임금을 깎았다.
스즈키 마사토 홍보과장은 "구조조정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회사측의 진지한 노력에 노조도 동의했고 노사 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아예 "종업원 목을 자르려면 경영자가 할복하라"(오쿠다 히로시 회장)고 할 정도다.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도요타 노조는 대신 56년째 무파업 원칙을 고수하며 생산성 향상에 힘쓴다.
◆'Down to us!'(우리에게 내려왔다)
경제학을 전공한 주바치 료지 소니 사장은 생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공학도 출신이다.
그는 작년 6월 부임한 직후 세 가지 핵심 전략을 발표했다.
고객 관점의 경영과 기술 차별화,그리고 현장이었다.
그는 "작은 헤드쿼터(사령부)와 강한 현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부임 후 8개월간 일본과 미국 중국 등지의 공장 9곳을 직접 방문했다.
책상에 앉아 보고를 받는 다른 사장들과 달리 생산라인에서 직접 근로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공장뿐만 아니라 아키하바라(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상가)를 찾아 판매직원도 독려했다.
'소니를 살릴 아이디어 내보라'는 그의 제안에 직원들은 2000건이 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주바치 사장의 현장 방문에는 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도 자주 동행한다.
최근 수년간 과거의 명성을 잃고 휘청거렸던 소니는 작년 4분기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1689억엔의 순익을 냈다.
◆불황 속에서 감행한 장기 투자
일본의 대표적 하이테크 기업인 교세라가 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5년이었다.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였다.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
당시 태양전지는 인공위성과 같은 '국책 사업'에만 쓰였다.
가격이 워낙 비싸 일반인은 꿈도 못꿨다.
개발 과정에서도 가격을 낮추면 성능이 떨어지고 성능을 높이면 가격이 올라가는 딜레마가 반복됐다.
1982년 가까스로 양산에 들어갔고 93년에야 비로소 대당 600만엔의 주택용 태양전지를 선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장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은 개선될 조짐이 없었다.
결국 30년 가까이 적자 행진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설비 투자와 기술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200만엔대 고성능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때마침 경기가 호전되고 전 세계적으로 태양전지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지금은 수요를 따라가기도 벅찬 형편이다.
◆사라지지 않은 장인정신
도쿄 인근 이바라기현 모리야시에 위치한 마에카와 제작소.도쿠나가 노부오씨(69)는 거푸집(부품을 찍어내는 틀) 제작 전문가다.
그는 4년 전쯤 신제품을 내놨다.
원래 주형 재료인 모래를 굳게 하려면 경화제(硬化劑) 등 화학물질을 써야 하지만 그는 물을 넣은 뒤 영하 40도에서 동결시키는 방법을 선보인 것."얼음이 녹으면서 주형이 자연 붕괴되기 때문에 먼지나 소음이 적을 뿐만 아니라 원료(쇳물) 손실도 크게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쿠나가씨 같은 사람을 일본에선 쇼쿠닌(職人)이라고 부른다.
나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스스로 최고를 지향하는 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는 쇼쿠닌 양성 제도에 미래를 거는 곳이 많다.
도쿄=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