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기업인 '두바이포트월드'가 영국 항만 회사인 피닌슐러 앤드 오리엔탈 스팀(P&O)을 인수하려는 사건이 미국에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P&O는 뉴욕 볼티모어 마이애미 등 미국의 주요 항만 6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는 최근 두바이포트월드가 P&O를 인수하도록 승인했다.

이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는 등 워싱턴 정계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주의가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에서도 국가 기간산업의 국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와 의회의 시각 차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상원의원들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항만 운영권 계약 체결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강경한 입장이었던 부시 대통령도 최근 한발 물러나 이를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여기에 두바이포트월드가 미국 항만 인수 결정을 45일간 유예한다고 발표,미국 행정부의 검토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항만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미국 내 행정부와 의회의 시각 차이가 여전해 이번 거래가 성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강한 반대를 설득하기 위한 거래 유예 결정을 지지한다"면서도 "이번 거래 연기가 거래 자체를 무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 상원의원 3명은 "항만 관리권 이전으로 인한 국가 안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도입한다는 당초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외자 유치 필요성

항만 운영권을 둘러싼 워싱턴 정가의 과도한 반응은 미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외국 자본의 미국 내 자산 인수에 과도하게 반응할 경우 자본 이탈을 초래,미국 경제 전체가 심각한 후퇴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7257억달러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4년 연속 사상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이런 천문학적 규모의 무역 적자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해외 자본 유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투자 지속가능성이 높은 고정자산에 대한 외국 자본의 미국 투자는 지난해 2조7000억원에 불과해 돈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두바이포트월드가 속한 UAE는 지난해 미국에 투자한 이머징마켓 국가 중 두 번째 큰손이다.

지난해 대미 투자 규모가 10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UAE는 미국의 최대 무기 고객이기도 하다.

2007년까지 80대의 미국제 F-16 전투기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올해 미국으로부터 19억달러어치의 군사장비를 구입할 예정이다.

2006년 국방예산은 37억달러로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202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 중동 국가들이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1211억달러에 달하는 반면 미국에 대한 고정자산 순투자액은 1억9200만달러에 불과하다.

중동 국가들의 미국투자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도 미국 정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보를 내세운 미국의 보호주의 흐름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가고 있다.

인수 반대론자들은 UAE와 알 카에다의 연계성을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 조직과 연관이 있는 UAE에 미국의 주요 항만들을 운영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논리다.

정체불명의 항만 노동자들을 채용할 수 있고,항만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항만 운영으로 인한 이득이 테러 조직의 운영 자금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반대론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뉴욕 및 뉴저지 항만국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P&O를 상대로 30년간 지속해온 임대 계약을 중단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