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조사에서 설문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을 분석할 때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사항은 사람들이란 필요한 경우 언제나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질문이 지극히 사적인 내용과 관련된 것이면 더욱 그렇다.
개인소득이 얼마인지,플레이보이 잡지와 같은 음란잡지를 보는지,퇴폐이발소에 출입하는지,성생활은 어떤지 등에 관한 물음에는 사람들이 속마음을 터놓고 응답한다고 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질문의 응답자체가 사회적인 규범에 의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socially desirable) 여겨지는 특정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 응답자들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거나 응답을 거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은 부인을 때리십니까? ①예 ②아니오"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응답을 거부하거나 자연스럽게 '②아니오'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경우 조사자는 응답자 자신과 관련된 직접적인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문제로 바꾸어 "당신은 남자들이 부인을 때리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예 ②아니오"로 질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접적인 문제로 바꿀 수 없는 경우 응답자들의 자연스런 거짓말을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의 한 지역에서 세금과 징병의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그 지역의 인구는 2800만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몇 년 후 같은 지역에서 기아구제에 대한 인구조사가 다시 실시됐는데 인구가 1억500만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수 년 동안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리 만무하고 처음조사에서는 세금과 징병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사람들이 가족 수를 줄여서 응답했을 것이고,둘째 조사에서는 기아구제 구호혜택을 많이 받으려는 이유에서 가족 수를 부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거짓응답이 중국의 시골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 있어서 세금을 내기 위한 소득신고에서 여전히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 한 의사출신의 여성이 보사부 장관에 임명된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 장관은 어떤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세무서의 소득신고 금액은 연 1000만원 정도였다. 의사요 큰 병원의 원장이 그렇게 소득이 낮을리 없기 때문에 소득을 낮게 신고한 부도덕성이 여론의 문제가 되자 장관은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예를 또 들어 보자. 최근 신문에 난 기사의 내용이다. 한 변호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보험회사에서는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그 변호사의 소득을 조사했다. 세무서에 신고된 소득은 연 1000만원 정도여서 이 신고소득을 근거로 보상액을 산정했다.
당연히 변호사의 가족들은 이 보상액이 불충분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사망한 변호사의 실제소득은 신고소득보다 훨씬 높으니 실제소득을 기준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보험회사측에서는 신고소득을 기준으로 보상액을 산정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우겼다. 신문기사는 재판에서 누가 이길지 궁금하다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소비자에 관한 시장조사는 조사방법상에 있어서 비교적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다고 할 때 그 신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 및 그에 따른 수요예측을 하는 조사기관은 당연히 잘못 예측했을 경우 그 회사가 부담하게 될 엄청난 투자손실을 감안해 철저한 조사를 하게 된다. 철저한 조사란 조사의 각 단계에서 있을 수 있는 잘못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체계적인 조사를 한다고 해도 소비자의 선호에 맞는 신제품 개발은 모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태도나 선호 등은 (제품의 사용)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며 또한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인 것이다.
신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소비자에게 실제로 보인 뒤 소비자의 반응을 조사하는 것이 신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처음 대하는(사용해 보는) 신제품에 대해 태도나 선호가 형성될리 없고,설사 형성됐다 하더라도 지극히 순간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조사에서 "신제품이 마음에 든다""물건이 나오면 바로 사겠다"라고 응답한 소비자들이 정작 매장에 제품이 전시되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 제품이 시장에 나왔을 때는 시장조사에 근거한 생산자의 예측과 달리 판매가 부진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시장조사시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태도나 선호의 기본적인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최근에 히트한 상품 중 펌프 농구화가 있다. 농구화는 발목 보호를 위해 발목까지 올라와 있는데 작은 공기펌프를 이용해 바람을 넣을 수 있도록 한 농구화가 날개돋친 듯이 팔렸다. 이에 힌트를 얻은 몇몇 회사에서 공을 받을 때의 충격을 조절하기 위해 야구글러브에도 공기를 넣을 수 있도록 한 제품을 개발했다.
이 공기펌프 글러브에 대한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보인 반응은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소비자들은 철저하게 외면했고 제품을 개발한 회사는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세계의 콜라시장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양분한 가운데 치열한 경쟁을 각국에서 벌이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약세를 면치 못했던 펩시측이 공격적인 전략으로 젊은층을 파고들며 시장점유율을 높여가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코카콜라측은 오랜 연구 끝에 신제품을 개발해 뉴 코크(New Coke)라고 이름 지었다.
신제품은 무려 19만명이 참여한 시음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나 시판 후 실패상품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뉴 코크를 외면하고 구제품(Classic Coke)을 계속 찾았으며 코카콜라 회사측은 어쩔 수 없이 막대한 돈을 들인 신제품을 창고 속에 넣어야 했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