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70)이 오는 5월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일본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제11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1948년 게이단렌이 출범한 이후 철강 전력 자동차 등 중공업 기업들이 독점해온 회장직을 정보기술(IT) 업계 출신이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익우선' 원칙으로 기업 경영
8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동그란 얼굴에 붙임성 있는 인자한 표정을 띠고 있다.
원래 캐논 브랜드는 불교 용어인 관음(觀音)의 일본식 발음인 '관논'으로 시작했다.
창업주이자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의 큰 아버지인 미타라이 다케시가 불교신자였던 영향이 그대로 녹아 캐논의 기업 이념은 아직도 교세이(공생)다.
하지만 미타라이 사장의 경영 철학은 후덕한 첫인상과는 달리 철저하게 이익우선 원칙을 추구하고 있다.
1966년부터 캐논 미국지사 근무를 시작으로 89년 캐논 본사 전무로 귀국하기 전까지 23년간 미국에서 비즈니스맨으로 가다듬어진 영향 때문이다.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002년 1월 세계 톱 최고경영자(CEO) 25명 가운데 한 명으로 미타라이 사장을 뽑으면서 그를 결단력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그의 좌우명은 '숙려단행'(깊이 생각하되 결단은 과단성 있게 한다)이다.
미타라이 사장은 95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당시 세계시장 점유율 7위였던 PC 사업을 비롯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가 존경한다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한다.
구조조정 초기 일부 경영진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틀린 사업에 목숨을 거는 것은 폐가 된다" "목적을 수단과 혼동하지 말라"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셀(Cell) 생산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라인을 뜯어낼 때도 "결코 저항하려 하지 말라"며 본인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캐논,일본 전자업계의 최고실적 기업으로 부상
캐논은 2004년 매출 3조4678억엔,영업이익 5437억엔,당기순이익 3433억엔을 기록해 전자왕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 전자업계에서 최고 실적을 올렸다.
2005년엔 매출 3조7541억엔,당기순이익 3840억엔을 기록했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전년보다 0.3%포인트 높아진 10.2%로,창사 이후 처음으로 10%대에 올라섰다.
미타라이 사장은 "생산부문이 약해 도요타를 1년에 한두 차례 꼭 방문 한다"고 말하지만,결국 이 말은 도요타의 생산부문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캐논의 매출 총이익률은 50%를 넘는다.
투하자본 수익률(ROIC)과 자기자본 이익률(ROE)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매출액 증가율을 빼면 나머지 경영지표에서는 모두 도요타를 능가한다.
2004년 7월 닛케이비즈니스의 존경받는 기업 순위조사에서 도요타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설 정도로 환경보전과 이익의 사회 환원,고객 및 사원만족 등에서 일본 최고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50대 기업 도약 꿈꿔
캐논은 의료장비,디지털카메라 등에서도 세계 1위 기업이다.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로 새로운 상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생산 합리화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수익성도 좋아지고 있다.
컬러 복사기,레이저빔 프린터 등 주력 제품인 사무기기의 판매 호조로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늘고 있고,토너 카트리지 등 채산성이 높은 사무용 소모품 매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캐논은 미타라이 사장이 취임한 95년에는 부채만 8413억엔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보유 현금만 약 9000억엔에 이른다.
막강한 현금 동원력과 고수익 체질은 캐논의 끝없는 변신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
디지털 가전시장의 본격 진출에서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다각화,완전 무인 생산시스템을 통한 획기적인 원가 절감 등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캐논은 2010년 매출 5조엔,순이익 5000억엔을 달성해 세계 50대 기업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의 쓴소리 >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은 "일본 정부는 규제를 줄이는 작은 정부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증세 움직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타라이 사장은 게이단렌의 차기 회장로 내정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으로부터 민'의 흐름이 이어져야 하며 정부는 규제를 줄이는 계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재정 재건을 위해 재무성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소비세율 인상 움직임에 대해 "증세가 아니라 철저한 세출 삭감을 통해 재정 건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증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아시아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선 민간기업 간 교류 확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 개선에 재계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 개혁을 실천해 민간 경제의 활력을 살려 나가면 일본 경제는 인구 감소 시대에도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추진 중인 구조개혁 노선을 지지한다"며 "취임 후 오쿠다 히로시 게이단렌 현 회장의 정책을 승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타라이 차기 회장은 지금의 오쿠다 회장에 비해 정치권과의 교류가 적다는 평을 듣고 있다.
미국에서 23년간 근무한 '미국통' 경영자로 게이단렌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앞으로 그의 행보에 일본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