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아브라모프(48)라는 미국의 거물 로비스트가 불법 로비 혐의로 체포되면서 미국 정가에 때 아닌 '쓰나미'가 일고 있다.

스캔들에 연루된 미국 의회 의원만 40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대폭 물갈이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공화당의 톰 딜레이 하원의원은 다수당 대표 자리를 공식 포기했고,아브라모프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은 이를 반납한다고 발표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대형 로비 업체가 곧 문을 닫을 것이란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아브라모프,누구인가

유대인 출신인 아브라모프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 학생이던 1980년,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다음 해인 81년에는 전국 공화당 대학생 회장에 선출되면서 공화당과 질긴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86년에는 조지타운대 법학 박사까지 받으면서 로비스트의 길을 착착 닦아나갔다.

이후 94년 공화당이 40년 만에 하원을 장악해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자 워싱턴에서 법률회사에 취직,로비활동을 시작했다.

아브라모프는 공화당 실력자인 톰 딜레이 하원의원과 죽이 잘 맞았다.

이들은 공화당 출신 인사들을 로비회사에 취직시키는 '케이 스트리트(K Street)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후 아브라모프는 공화당 정권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스트로 손꼽혔다.

웬만한 현역 정치인은 가소롭게 여길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부시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과도 친분을 과시했다.

존 애슈크로프트 전 법무장관이 현직에 있을 때도 여러 차례 만났으며 딕 체니 부통령 측근과도 자주 어울렸다.

◆불법 로비의 사례

아브라모프는 지난 5일까지 이틀간 검찰 측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줄여 달라는 '플리바겐(plea bargain)'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네 가지 혐의를 시인하면서 그동안의 루머가 사실로 확인됐다.

먼저 그는 미 루이지애나주 인디언 부족들로부터 8000만달러를 받고 도박사업 허가를 얻어주기로 했는데 결국 실패하면서 '사기죄'를 얻게 됐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거주하는 미국 인디언들은 카지노 같은 도박시설을 유치해 생업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으로 자선단체를 통해 로비자금을 전달받음으로써 '탈세'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입법활동에 필요하다는 핑계로 여행과 골프,각종 향응을 베풀어 '뇌물죄'를 저질렀다.

마지막으로 플로리다주 카지노 유람선 매입을 위해 2300만달러짜리 송금증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허위로 드라났다.

◆두려움 가득한 미국 정치판

당장 조지 W 부시 대통령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시 대통령 재선운동본부는 아브라모프에게서 받은 6000달러를 전미심장협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아브라모프가 중간에서 부시 캠프에 모금해준 돈은 이보다 훨씬 많은 10만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톰 딜레이 의원과 로이 블런트 공화당 원내대표도 각각 5만7000달러와 8500달러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아브라모프로부터 2만달러 이상 선거자금을 기부받은 국회의원은 공화당 19명,민주당 6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물갈이 여론도 빗발치고 있다.

CNN과 USA투데이,갤럽이 100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직 의원들이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재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42%에 불과했다.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1994년 동일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올 들어 가장 중요한 이슈로 이라크전(45%) 다음으로 정계부패 문제(43%)를 들었다.

로비제도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뜯어고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제출한 로비제도 개혁 법안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법안은 △로비 자금의 사용 내역을 자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원들의 로비회사 취직을 일정 기간 금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