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들이 '석유와 가스의 힘'을 앞세워 국제무대에서 완력을 높여가고 있다.


자국의 외교력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전 세계 에너지 전쟁이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 생명선'인 파이프라인(송유관과 가스관)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갈등도 날로 격화하고 있다.
[세계 에너지 패권 전쟁 불붙나] 석유ㆍ가스로 국제 영향력 극대화 노려
◆에너지 갈등은 20세기의 역사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이 그렇고 1차,2차 세계대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도 에너지를 봉쇄하고 확보하려는 투쟁의 연장선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1937년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자 미국은 일본의 해상 자원 수송로를 봉쇄했고 이는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미국과의 일전을 치르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서방국가들이 중동에 관심을 갖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안정적 원유 공급원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953년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던 이란의 모하메드 모샤데그 민주정권이 전복되고 팔레비 왕정이 들어서게 된 배경에는 석유 이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자원부국 에너지 외교 강화


에너지는 이미 외교전쟁의 중요한 무기로 등장한 지 오래다.


최근엔 중남미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차베스는 엄청난 석유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반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1일 민간 기업의 유전지대 32곳을 국가가 통제키로 하는 등 석유산업 국유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여기에 중남미를 종단하는 천연가스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에너지 전쟁의 새로운 불씨가 될 전망이다.


오는 22일 볼리비아 대통령에 취임하는 에보 모랄레스도 차베스의 노선에 가세해 에너지산업 국유화를 추진한 뒤 국가가 직접 서구 메이저 기업들을 상대로 석유 판매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르푸르 사태(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수단 아랍계 민병대가 원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와 핵개발 의혹을 이유로 국제사회가 수단과 이란을 제재하려 할때 중국이 반대하고 나선 것도 자원 때문이다.


중국은 수단과 이란으로부터 상당량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이란은 특히 지난해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 이후 '에너지 무기화'를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과 송유관 건설에 합의했고 자국 내 핵발전소 가동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제재할 움직임을 보이자 유가를 인상하겠다고 나서면서 긴장의 파고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1기부터 에너지 안전보장을 외교통상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의 에너지 질서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분석했다.


◆"파이프라인을 장악하라"


세계적으로 에너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도 늘고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일단 완공되면 수송비가 저렴해지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공급처를 바꾸기가 쉽지 않고 공급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단점도 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급국에 종속될 우려가 큰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힘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도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을 비롯한 주변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위상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주도로 개통된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송유관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러시아를 통하지 않고 지중해를 통해 서유럽에 공급하기 위한 것.


이전까지 카스피해 원유는 흑해의 러시아 항구인 노보로시스크를 이용하는 CPC라인을 통해 수송됐다.


BTC 건설로 러시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서방은 러시아를 아예 BTC 건설 컨소시엄에 넣어주지도 않았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노선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어느 한 나라에만 유리하게 노선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해 초 확정될 노선안에 따르면 1단계 구간은 중국에 유리하도록 러·중 국경을 따라,2단계는 일본을 겨냥해 극동까지 연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1단계 구간은 2008년까지 완공 예정이지만 2단계 공사는 추진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도 많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