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동정 아닌 '기부 문화' 정착해야

냄비만큼 붉은 지폐들이 구세군 자선 냄비에 한가득 채워진다.


ARS 결손 돕기를 위한 손가락들이 분주하게 버튼을 누른다.


지난해 구세군의 모금액은 28억5000여만원으로 당초 목표액(27억원)을 초과했고,사랑의 리퀘스트 ARS 모금액도 400억원을 넘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사회 환원,부유층의 위탁 기부 등을 알리는 기사는 지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작은 동정심에는 선뜻 손을 내밀지만 희사 문화에는 인색한 우리 풍토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희사(喜捨)는 사전적 정의로 '남을 위하여 기꺼이 재물을 내놓음' 이라는 뜻으로,단순한 동정심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꼼배다리)에서 우리는 아침마다 밥을 구걸하러 다닌 춘근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문학 등을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던 우리 풍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 MS 회장이 재산 절반을 쾌척해서 운영되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같은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자선 재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GM대우한마음재단,승국문화재단 등이 있지만 소수에 그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IMF 이후 그 규모와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선 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기업 홍보 등을 위한 수단에 그치는 정도가 많다.


이러한 풍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문화에 깊게 자리매김한 혈연·가문 중심의 배타적인 가족주의를 엿볼 수 있다.


공동체의 번영보다는 가족이나 가문,개인의 영달 추구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보릿고개와 한국전쟁 등 오랫동안 힘든 생활로 지내왔기에,힘들게 번 돈을 기부하는 것에 인색해 한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점들은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충족한 사회가 된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희사문화'가 보다 보편화되기를 소망한다.


물론 대문을 두드리는 춘근이에게 작은 정성을 보태는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더 이상 춘근이가 구걸할 깡통을 드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오지혜 생글기자(서울 오류고 2년) jiheay3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