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을 빛낸 10대 연구] 진화! 현재진행형 … 베일 벗겨질까

진화의 비밀은 여전히 우리 인류의 숙제로 남아 있다. 600만년 전쯤 인류는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와 분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첨단화된 현대 과학기술 덕택에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진화 현상의 규명을 2005년 최고의 연구 성과로 꼽았다.


과학의 영역은 너무나도 넓다. 저 미지의 우주에서부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무궁무진하다. 사이언스지의 2005년 10대 연구성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과학자들의 최신 탐구활동이 포함됐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줄 과학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그 세계로 들어가 보자.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2005년도 최고의 과학연구 성과(Breakthrough of the Year)로 '현재 진행형인 진화의 증거 포착'을 선정했다. 콜린 노먼 뉴스 편집장은 "2005년 발표된 여러 연구 성과를 논의하다가 모두 진화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2005년은 진화 연구의 획기적인 해라고 할 만하며 이는 진화가 생물학 전 분야의 바탕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 ◆진화는 현재 진행형


186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진화론은 인류의 근원을 캐내려는 과학자들의 주요 연구대상이 돼 왔다. 여전히 논란은 있으나 DNA 분석기술을 비롯한 생명공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에 2005년에는 진화가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과 진화론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게놈을 분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로는 처음으로 침팬지의 게놈 분석을 완료해 진화론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를 비교함으로써 진화의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결과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6%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화의 과정 중에 인간과 침팬지가 각종 질환과 언어 구사 능력 등에서 차이점을 보인 원인도 일부 규명됐다.


또다른 국제 공동연구팀은 백인 흑인 아시아인 등 4개국 사람들의 유전자 차이를 규명,인류 진화 역사를 밝히는 단서를 찾기도 했다. 이 밖에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복원돼 인류 건강에 위협을 주고 있는 바이러스의 진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종은 어떻게 분리됐나


새로운 종의 출현과 종의 분리에 관한 두드러진 연구성과도 많이 나왔다. 보통 종의 분리는 하나의 종이 지역적으로 떨어지게 됨으로써 발생하게 되지만,같은 지역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증거들이 속속 밝혀졌다. 또 진화론의 자연선택에 미치는 유전자의 역할도 많이 연구됐다.


옥수수 해충인 유럽의 조명충나방은 같은 지역에서 두 종류로 나눠진 것으로 연구됐다. 한 종류는 옥수수를,다른 종류는 홉 열매 등을 주로 먹으면서 각기 다른 페로몬을 내게 됐고 결국 같은 종류끼리만 짝짓기를 함으로써 종이 분리됐다.


지구 북반구에 있던 바다 큰가시고기는 빙하기 끝 무렵 여러 호수에 갇혀 오늘날 각기 다른 종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각각 다른 환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 천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갖고 있었던 투구판을 현재는 모두 갖고 있지 않다. 각기 독립적으로 동일한 방향의 진화를 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DNA 결함이 가시고기 뼈의 발달에 영향을 줘 이처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두 종류의 초파리에 대한 연구에서는 전체 DNA에서 40~70%를 차지하는 쓸모없는 비유전자(Non Coding) 영역이 종의 분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종에서는 이 영역이 동일하지만 다른 종에서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사이언스지는 진화 연구와 더불어 9개 분야를 '올해의 연구'로 선정했다.


행성 대탐험,식물 연구,중성자별의 성질,두뇌회로와 질병,지구의 탄생,핵심 단백질 규명,기후변화,세포 신호,국제핵융합실험로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우주와 생명과학은 여전히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2> ◆행성 대탐험=달을 비롯해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등 태양계 행성들과 혜성,소행성을 향하는 탐사선이 발사됐거나 이미 도착해 활발한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 우주선인 '호이겐스'호 탐사선이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에 착륙,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혜성에 탐사선을 충돌시킨 '딥 임팩트' 프로젝트도 큰 관심을 모았다.


<3> ◆개화의 신비=개화 현상 등 식물의 수수께끼를 밝혀주는 중요한 연구들이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꽃의 발달을 일으키는 생체 신호를 포착했다.


이 신호는 'FT'로 불리는 유전자로부터 나오며 낮이 충분히 길어지면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곳에 꽃이 피도록 유도한다.


<4> ◆중성자 별=과학자들은 2004년 12월 27일 은하수 중심부에서 일어난 강력한 복사파가 감마선 폭발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두 개의 오래된 중성자별 또는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급속한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5> ◆두뇌 회로와 질병=정신분열증과 투렛신드롬,난독증 등의 질환이 자궁내 태아 발육과정에서 구성되는 두뇌 신경회로의 이상 때문임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발표됐다.


과학자들은 이들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기능도 속속 밝혀냈다.


<6> ◆지구의 탄생=태양계 초기 물질과 유사한 운석들을 지구의 암석과 비교 분석한 결과 이들의 원자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지구 생성의 과정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다.


지구의 초기 물질이 태양계의 다른 영역으로 부터 왔을 거라는 주장과 지구 내부 깊이 감춰져 있을 거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7> ◆핵심 단백질 규명=우리가 통증을 느끼는 것과 같은 신경 전달현상은 세포 사이에 칼륨 이온 등이 이동하면서 나타난다.


이 칼륨이온의 통로로서 컴퓨터의 트랜지스터 같은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상세 분자구조가 밝혀졌다.


세포막에 자리잡은 이 작은 단백질들은 아주 미세한 전압 변화에 반응해 통로를 여닫아 칼륨 이온의 흐름을 조절한다.


<8> ◆기후 변화=인간의 활동과 지구 온난화의 상관관계를 밝혀주는 연구가 속속 발표됐다.


바다가 갈수록 따뜻해지고 있으며 태풍의 위력도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연구들은 기후협약 가입에 대한 미국 정치가들의 입장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9> ◆세포 신호=세포들이 화학물질과 주변 환경 신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연구들이 진척됐다.


미국 연구진은 세포 사멸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8000여개의 화학적 신호들을 모델링했다.


또다른 연구팀은 면역세포를 조절하는 신호 체계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기도 했다.


<10> ◆국제핵융합실험로=세계 최초의 핵융합 원자로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립지가 일본 로카쇼무라를 제치고 프랑스 남부 카다리시로 결정됐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



■ 2006년 주목할 연구


사이언스는 2006년 주목할 분야로 조류인플루엔자(AI),중력파 측정,RNA간섭(RNAi) 기반의 질병 치료,미생물 연구,슈퍼 플로 등을 꼽았다.


AI는 2005년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그 결과 올해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AI가 대유행병을 몰고 올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 루이지애나와 워싱턴주에 설치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는 올해 내내 하늘을 관찰한다. 만약 두개의 중성자별이 5000만광년 이내에서 충돌한다면 이 장비는 이를 탐지할 수 있다.


병과 관련된 유전자의 작동을 중지시키거나 활성화시키는 RNAi 치료법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도된다. 소아 호흡기 바이러스 질환 등에 대한 임상이 시작되며 C형 간염 임상도 곧 이뤄질 계획이다.


2년 전 몇몇 물리학자들은 고체상태로 만든 헬륨이 액체처럼 흐른다고 발표했다. 학자들은 이 같은 '슈퍼 플로'가 잘 배열된 결정구조에서 가능한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그 결과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미생물은 여전한 탐구 대상이다. 올해도 진화와 분자학적인 관점에서 미생물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 2005년 추락한 연구


사이언스는 과학계의 2005년 '올해의 추락'(Breakdown of the Year)으로 미국의 입자물리학을 선정했다.


입자 물리학은 원자와 원자의 구성 물질들을 밝히는 기초학문이다.


물질의 존재와 우주 생성의 비밀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지만 연구를 위해선 대규모 시설과 막대한 비용이 든다.


미국의 입자물리학자들은 2005년에 예산문제 때문에 새로 시작하려고 했던 두 개의 중요한 실험을 취소해야만 했다.


동시에 에너지국은 비용 절감을 위해 물리학자들에게 실험 조기 종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물리학자들은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이뤄질 예정이던 1억4000만달러 규모의 쿼크입자 실험이 에너지국에 의해 취소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5월에 에너지국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에 있는 두 개의 입자 충돌기 가운데 하나를 중지시킬 것을 요청했다.


연구자들은 이에 따라 각각 2008년과 2009년에 두 장치를 멈추기로 했다.


물리학자들은 이 분야 발전을 위해선 미국의 강력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중인 국제 선형충돌기(ILC) 건립은 미국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