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가전제품을 포함해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이른바 '하이테크 제품'의 수출 규모에서 미국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제품의 수입을 포함한 전체 무역 거래 규모도 미국에 근접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의 급성장은 재래식 무기 체계를 대폭적으로 현대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어 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매우 위협적인 것으로 지적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이 지난해 랩톱 컴퓨터,디지털 카메라,소비자 가전 등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만든 제품의 총 수출 규모는 1800억달러로 같은 기간 미국의 수출액인 1490억달러보다 많게 나왔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이 같은 수출 규모는 2003년에 비해 무려 46% 늘어난 것으로 IT 분야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한 제품 생산과 수출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미국의 수출 규모는 2003년에 비해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출과 수입을 합친 중국의 첨단 기술 무역 규모는 지난해 3290억달러로 미국의 3750억달러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96년 첨단기술 무역 규모가 350억달러에 불과했는데 10년이 안 돼 10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무역 규모는 1.6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중국이 더 이상 노동 집약적 저가품을 수출하는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AT&T의 전직 중국 회장이었던 '아더 코블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가 섬유·신발 등 단순 제조업에서 이제는 매우 정교한 전자 제품 생산으로 확연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미 지난 5월 중국의 컴퓨터 제조 회사인 레노버가 17억5000만달러에 IBM의 PC부문을 전격 인수,세계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또 일부에서는 중국이 자국의 기술 표준을 국제 시장에서 밀어붙이고 있다고 경계한다.

이미 대규모 수출을 무기로 휴대폰,디지털 포토그래피,무선 네트워크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현재 미국 등 서방 진영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 수출을 금지하는 규제가 없었더라면 중국의 하이테크 제품 수출 규모는 지금보다 더 늘어났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OECD 보고서는 또 중국이 첨단 기술 개발에 힘입어 군사력도 매우 급속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테크 기업과 정부의 강력한 연구개발(R&D) 전략이 맞물리면서 군사력을 현대화시키는 이른바 '디지털 트라이앵글'이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워싱턴 소재 국제평가전략센터의 리처드 피셔 부소장은 뉴욕타임스와 회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현재 미군이 추진하고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IT 관련 첨단 기술을 빠른 속도로 습득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OECD 보고서는 조만간 경제는 물론 군사력의 핵심 기술에서 미국이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예견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 하이테크의 발전 원동력은 공교롭게도 인텔,MS,노키아,모토로라,시스코 등 서방 세계의 거대 기업들에 있다는 게 재미 있는 관측이다.

중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해외 투자를 받은 중국 기업의 90%가 지난해 하이테크 제품을 수출한 기업으로 밝혀졌다.

즉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중국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하도급을 줘 수입하는 경제 구조상 중국의 첨단 제품 개발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제적 기업들이 속속 R&D센터를 중국에 설립하고 있어 중국의 IT 기술은 더욱 첨단화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