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폴리니라는 이탈리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있다.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해 전도양양하던 그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미래가 보장된 피아니스트가 뭐가 불만이어서…"라며.하지만 그는 지휘법을 공부하는 등 자신을 더 갈고 닦는 데 10년을 보냈다.

이를 두고 비평가들은 '침묵의 10년'이라고 불렀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실로 긴 시간이었다.

일본 경제가 거품 붕괴 이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10년(decade)'에 의미를 둬서 그렇지 사실상 15년이 걸린 셈이다.

일본 경제의 거품 형성과 붕괴 그 이후 재기 노력을 간단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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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에 거품이 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토대로 외국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일본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급등하는 등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84년의 금융자유화 조치 △85년의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화값 폭등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80년대 후반의 저금리 정책(정책금리 5%→2.5%로 인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본 경제의 거품이 형성됐다.

◆광기어린 '자산 사재기'

금리가 워낙 낮아지자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게 되고,이 돈으로 개인과 기업들은 토지와 주식을 '미친 듯이' 사들였다.

특히 기업의 부동산 투자는 문제를 확대시켰다.

일본 기업의 연간 토지 순매입은 80년대 초 1조엔 미만이었으나 80년대 후반에는 6조7000억엔으로 폭등했다.

일본 기업이 '사업회사+투자회사+부동산회사'복합체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닛케이주가는 83년부터 7년 연속 매년 20% 이상씩 올랐다.

부동산 가격도 83~89년 사이에 거침없이 상승했다.

한번 불이 붙으니까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낮은 부동산 보유세와 상속세가 부동산값 폭등에 일조했다.

1980년대 말 대기업들이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함에 따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돈이 남아돌았다.

이 돈은 신용이 약한 중소기업이나 부동산 회사,개인들에게 대규모로 대출됐고 부실채권이 양산되는 계기가 됐다.

◆무시무시한 거품 붕괴

1990년에 땅값 급등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일본 정부는 급격하게 대출을 규제하고 금리를 인상했다.

은행과 신용조합,보험회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융자 총량 규제'에 나섰고 금리를 89년 중반부터 1년간 2.5%에서 6%로 인상했다.

정부의 급격한 긴축정책으로 거품은 터졌다.

닛케이지수는 1989년 말 3만8915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하락하기 시작해 1990년 10월 2만엔까지 떨어졌다.

이후 97년 말까지 1만7000엔대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98년 후반 금융재생 관련 법안 시행과 경기 회복세를 타고 일시 회복됐으나 다시 경기 후퇴로 급락,2002년 20년래 최저치인 8000엔대까지 떨어졌다.

땅값은 1991년부터 폭락하기 시작했다.

일본 땅값은 거품 형성기였던 80년대 10년 동안 약 4배 뛰었으나 2000년대에는 다시 80년대 초반 가격으로 되돌아왔다.

11년 동안 연속적으로 떨어져 91년 가격에 비해 주택지는 36%,상업용지는 76% 하락했다.

◆부실의 후유증

당시 자산가격 급락으로 사라진 자산액은 100조엔에 달했다.

부동산 건설 유통 분야의 대출이 고스란히 은행의 부실채권으로 이어졌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금융회사가 사람의 피에 해당하는 돈을 시장에 제대로 대지 못하게 되고 기업과 개인은 신용경색에 시달리다 파산하고 만다.

문제는 1990년대 내내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주가 및 땅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부실채권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것이다.

사태가 악화된 것은 거품붕괴 직후 일본 정부와 은행이 사태를 낙관하고 부실채권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보다는 쓰러져가는 주택전문회사 등 제 2금융권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안이한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혹독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주택투자,내구재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로 이어져 전형적인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 빠졌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보다 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97년 4만2000달러 선에서 2001년 4만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

중소기업과 부동산업체에서 시작된 파산은 97년 이후 대기업으로 확산됐다.

97년 산요증권 야마이치증권 등 금융회사도 문을 닫았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