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활기를 띠고 있는가를 보는 데 대표적인 지표가 투자와 소비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 두가지가 모두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기술 다진 10년'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설비투자와 소비 모두 늘어나

우선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각종 설비를 확장하거나 설비를 새 것으로 바꾸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말하는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일본 주요 기업 1762곳을 자체 조사한 결과 올해 말까지 이뤄질 일본 기업들의 설비 투자액은 24조5665억엔으로 지난해에 비해 15.2%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버블(거품)경제 붕괴 후 처음으로 투자가 두 자릿수(10.1%)증가세를 기록했던 지난해 실적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15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3·4분기(7~9월) 기업 투자 역시 작년보다 9.6% 늘어 일본경제의 회복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업들의 이 같은 설비투자 증가가 최근 일본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오랫동안 지갑을 굳게 닫았던 일본 소비자들 역시 최근 서서히 지갑을 열고 있다.

일본에서 소득이 있는 가구의 소비지출이 지난 10월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서 가구당 평균 32만5501엔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실질적으로 1.3% 증가한 것이다.

투자와 소비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경제성장률 역시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은행은 최근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전기 대비 0.4%(연율 기준 1.7%)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4분기 이후 4분기 연속 성장이다.

이에 따라 올해 일본 경제의 성장률도 2.2%로 상향 조정했다.

◆외국인 주식순매입 10조엔에 달해

일본 경제의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도 일본으로 몰려들고 있다.

일본의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들이기 위해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약 9조4410억엔(789억달러)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입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던 1999년의 9조1270억엔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이 같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매입 덕분에 일본 닛케이주가지수는 최근 1만5500엔 선까지 올라 연초에 비해 35%나 급등했다.

부동산 역시 들썩이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와 REIT(부동산 투자신탁)가 좋은 물건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이 올 들어 사들인 부동산만도 6조엔에 달한다.

이로 인해 외국계 투자가 집중된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쇼핑 중심지 긴자의 대로변 땅값은 평당 2000만엔 선으로 5년 전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호가가 평당 1억엔을 넘는 곳도 나타났고 도쿄의 신흥 쇼핑가 오모테산도의 상가 가격이 1년 새 평균 2배로 뛰자 벌써 부동산 버블 경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 상승으로 금리인상 단행 예상도

이처럼 일본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남에 따라 물가도 오름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최근 7년간 하락했던 일본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 10월에는 하락에서 벗어나 보합세를 보였고 11월과 12월에 상승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요사노 가오루 금융경제재정상은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 0~0.1%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 플러스로 전환되면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제로금리 정책이란 일본 정부가 침체된 일본 경기를 살리기 위해 단기금리를 사실상 0%에 가까울 정도로 낮게 유지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