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물가불안 등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뜻하는 잠재성장률(4%대 후반)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 전반에서 양극화가 심화된 게 1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양극화란 부자와 가난한 사람,대기업과 중소기업,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회복세가 아직은 그리 강하지 않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GDP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국내총소득(GNI) 증가율이 정체된 것도 체감경기 회복 지연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늘은 실질GDP 증가율과 실질GNI 증가율이 최근 들어 왜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자.

◆실질무역 손실 갈수록 증가

실질GNI는 실질GDP에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익과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을 더한 것이다.

따라서 실질GNI와 실질GDP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실질무역손익이나 국외순수취요소소득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실질GDP와 실질GNI 간 괴리가 커지는 주된 이유는 실질무역손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 있다.

실질무역손익은 국가 간 거래에서 교역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발생하는 실질소득의 국외 유출(실질무역손실) 또는 국내유입(실질무역이익)을 의미한다.

여기서 교역조건이란 수출입 상품 간의 교환비율이다.

보통 수출단가가 하락하거나 수입단가가 상승하면 실질무역 손실이 발생한다.

반대로 수출단가가 상승하거나 수입단가가 하락하면 실질무역 이익이 생긴다.

수출은 보다 비싼가격으로,수입은 보다 싼 가격으로 하는 게 국민경제에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약 24조원,올해(1∼3분기) 약 33조원의 실질무역 손실을 입었다.

교역조건 악화로 이처럼 실질무역 손실이 발생하다 보니 실질GNI 증가율이 실질GDP 증가율을 크게 밑돌 수밖에 없다.

◆IT제품 가격 하락,원유 가격 상승이 주 원인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출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IT제품은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고,그로 인해 신제품 개발 주기도 짧기 때문에 특정 제품이 시장에 일단 나오면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한다.

삼성전자에서 판매하는 애니콜 휴대폰이 처음에 출시될 때는 매우 비싼 가격에 나왔다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 IT제품의 수출단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 IT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부문에서 여타 해외기업들보다 기술력이 앞서기 때문에 신제품을 한발 앞서 개발해 비싼 가격에 내놨다가,여타 기업들이 추격해오면 가격을 낮추는 방식을 택한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의 약 16%를 차지하는 원유의 가격은 크게 올랐다.

원유 가격은 최근 2∼3년간 주 생산국인 중동지역의 정치적 불안,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유 수요 증가,원유 생산능력 정체 등의 이유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여 과거의 '오일쇼크'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의 교역조건이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대만보다 더 크게 악화된 것도 이들 나라보다 수출에서 IT제품이 차지하는 비중과 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수출품 중에서 IT제품을 제외하고,수입품 중에서 원유를 빼면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은 최근 몇 년간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