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 그리고 탈근대 문제는 많은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출제된다.
논술이 근본적으로 '지금 여기'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근대의 의미가 무엇인가' 혹은 '근대의 발전과정이 놓치고 지나간 것들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가 가능할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것은 근대 출현의 의미일 듯하다.
첫째는 개인의 출현이 지니고 있는 의미이고 둘째는 근대적 합리성의 의미다.
요즈음 각 대학의 논술 출제 경향을 보면 세계화의 맥락과 양상에 관련되는 문제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화라는 현상은 단순히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양상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것에서부터 국제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6)자본의 세계화:대립과 갈등
세계화 과정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 세계화는 국가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인 쇼비니즘적 경향을 제어하면서 민족적 다양성 추구의 장을 여는 전지구적 공동체의 실현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세계화는 시장의 질서로 지역 고유의 문화들을 재단하고 제거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정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세계화 반대 시위를 종종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상징적 대상으로 맥도날드·나이키·스타벅스 같은 다국적 기업의 매장을 공격하는 사진이 보도되곤 한다.
맥도날드 시위 양상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세계화에 의한 이질적인 문명 간의 대립과 공존 문제다.
문명의 문제라고 했지만 해당 국가의 경제 복지 환경 노동 등과 동떨어진 문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명의 문제는 다시 세계경제,국제정치,지구 환경의 문제로 확산되는 중차대한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한 논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빈부격차 확대와 더불어 더욱 편이 갈리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부자 나라들이 세계화라는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 가난한 나라들의 자원을 빼앗고 환경오염을 야기하며 나아가 정통적인 가치관까지 파괴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그 같은 감상적 반세계화 운동은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가난하게 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화가 가난한 나라에도 분명히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에 나이키 신발공장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생활은 더 나빠졌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세계화가 초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과정이기에 전세계에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는가 하면,다른 한편으로 전지구적 규모의 시민적 저항이 반세계화 투쟁 과정에서 불붙기 시작했다는 역설적인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와 같은 양면성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획일화와 지역 문화 파괴의 부정성을 경계하면서,다른 한편으로는 성큼 가까워진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7)세계화 시대의 문화 다양성
과학기술과 통신 수단의 급격한 발달 등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는 '지구촌 이웃'이라는 인식이 가능할 정도로 통합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문제는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나라와의 문제로까지 복합적 양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상호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한층 더 초래할 수 있게 됨은 물론 극단적으로는 테러나 전쟁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런 양상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논리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 강구와 함께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명권과 문명권,국가와 국가,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지양하고 우애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서로의 참모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갖추어질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참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입관이나 편견을 최소화하고 대상을 다양한 시각과 심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바로 보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문화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묻는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제시문을 이용하여 이를 통합 이해하는 능력을 함께 요구하곤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의 '능양시집서(菱洋詩潗序)'에서 발췌한 글 등 우리의 '고전'을 통해 오늘날의 상황에서 주요 해결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적 현상을 해소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고전이 갖는 현대적 가치와 의의를 두루 음미하도록 유도하는 문제가 출제 문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8)오리엔탈리즘과 자민족 중심주의
세계화의 주요한 특징은 서구 중심의 인식과 이데올로기이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아랍인과 유대인,터키인은 공존했고 이것이 실제 현실이었다.
그런데 서구적 근대화 과정에서 이들이 각각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저항이 있었고 불행하게도 유대인과 이슬람인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는 미국인들에 의해 상정된,이슬람인들은 나쁜 사람이고 유대인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가상적 현실'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졌다.
이처럼 현재의 서구와 이슬람권의 갈등은 상당부분이 이런 '가상현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때때로 이런 가상현실을 '실제현실'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과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 일반의 인식은 동양을 문화적,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동원된 제도와 학문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제국주의 시대 이후 동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러한 서양의 학문적·문화적 지배 안에서 구성된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자기 인식이 서양 위주로 재편된 인식이라면,과연 우리는 이러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오리엔탈리즘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동일한 의식의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아와 타자를 끊임없이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서구가 동양을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혹은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서구를 적대시하는 것도 모두 그러한 중심주의적 발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보이는 식민지 민족주의의 이중성 역시 서구와 비서구의 이중적 잣대가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과 같다.
이 주제와 관련된 논제는 오리엔탈리즘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현상이나 원리 등을 보여주면서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타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중심주의를 끊임없이 해체하려는 자기 노력과 자기 성찰이야말로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서구중심주의적인 폭력에서 벗어나서 타자와의 참된 만남을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일 것이다.
(9)생명복제 시대의 인간
세 번째의 큰 주제는 정보화와 과학기술을 함께 결합하여 제시되는 형태의 문제들이다.
생명복제의 문제와 정보과잉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생명복제 기술은 현재 과학기술이 도달한 첨단분야로 첨예한 사회적·윤리적 쟁점이 되고 있다.
기술발전이 언제나 윤리적 문제와 충돌한다는 사실은 물리학의 발전과 핵무기,정보기술의 발달과 보안문제 등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배아복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전공학 분야의 복제기술 연구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의 정도가 다른 사례와 크게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인간복제의 경우에는 실험과정에서 배아 상태나 태아 상태의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는 전세계에서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금지가 우리에게 확실한 안전망이 되지는 못한다.
현재 복제기술은 인간복제의 금기를 피하기 위해 배아복제,줄기세포배양 등의 기술적인 출구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심지어 모 종교단체에서는 인간복제 자체를 실험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제 복제기술은 우리 곁에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은 이미 상용화돼 우리의 식단에 오르고,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각종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올바로 사용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
생명복제기술이 지닌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생명윤리법안과 같은 법률적 장치 이외에 사회제도의 측면에서,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노력할 수 있는 방안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이런 문제들이 우리의 고민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답은 아직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답을 찾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논의의 공간이 마련되어 잇지 않다는 것이다.
유전자조작식품으로 인한 위험성을 우리에게 알려줄 사람들은 누구이고,그것의 안전성을 검사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문제들이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한다면,또한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생명복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10)정보과잉 시대의 해법
정보화 시대라는 것은 우리시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렇지만 그 영향력이 강력한 만큼 어려 문제들을 낳고 있다.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익명성으로 인한 파괴적 언어의 출현,인터넷 매체의 새로운 등장,정보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의 최소화 문제 등이다.
그러나 정보화의 첨병인 컴퓨터와 인터넷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그 체험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바로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복잡한 대량정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광고,도로의 표지판,간판,그리고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한 정보들까지 자신에게 필요한지 혹은 필요가 없는지 분간할 겨를도 없이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보과잉의 시대'라고 부른다.
[ 신경향-탈근대 문화 현상 ]
2005년을 기점으로 주요 대학에서 관심을 갖는 주제는 탈근대적 문화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적 현상을 다룬 제시문으로 출제하면서 그런 현상의 이면에 있는 의미들을 해석하는 낯선 문제들이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무수히 접하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인간의 욕망','이미지' 혹은 '사회적 언어로서의 웃음'과 같은 추상적인 주제들이 그것이다.
①인간의 욕망
2005년도 연대 정시에서는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탈근대적인 문화현상을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문제였다.
탈근대 사회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여가를 보낼 것인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어떤 학자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가장 중요한 생활 문화 혁명은 텔레비전,자동차,피임법,휴가제도 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요소에 의해 생활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인간의 내적인 욕망도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쾌적한 근무,늘어나는 여가시간,쾌락적 삶의 태도 등이 일반화되고 있는 탈근대 세계에서는 이 같은 일상적 영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질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경제적 욕망이 충족되면 문화적 욕망이나 자아완성에 대한 욕망을 높여간다.
이러한 욕망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인간은 좀더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일상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사실 산업사회 초기에는 여가가 단지 좀더 노동을 잘 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여겨졌지만 20세기 후반기에는 쾌락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자아 완성을 추구하는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세계의 일상성'을 쓴 앙리 르페브르는 "인간 존재란 욕망,노동,즐거움으로 구성된다"고 전제하면서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만 인간의 참된 모습이 실현된다"고 봤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얼핏 우리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는 고대 사회,봉건 사회 등 기존의 사회들과는 달리 결코 욕망을 부정하거나 누르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거의 공기나 물과도 같다 해야 할 현대 문화를 창조했다.
기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발달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두 날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컴퓨터·휴대전화와 같은 테크놀로지들과 스포츠·연예 같은 대중문화에 지배당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돈이 되는 욕망만을 부추기고 조작해낼 뿐 여타의 다른 욕망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 개인의 주체적인 삶의 의미는 사라지고 자본의 욕망에 의해 식민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을 지배하려는 세계의 욕망에 맞서 다른 삶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하고 할 수 있다.
②이미지와 기호
다음으로 '이미지'란 주제를 살펴보면,디지털 카메라가 젊은 층의 필수 소장품 목록에 들어가고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첨가되면서 이제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라 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대중적이자 대규모로 만들어지는 영상이 나날이 진보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소통되는 현실은 실로 이미지의 시대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현상이다.
이미지가 문자와 달리 대상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문자의 번역과정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고 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효율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범람하는 영상 이미지가 전해주는 현실이 어떤 현실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논의해 봐야 한다.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성찰을 돕기 위해 연세대 기출 문제에서는 우선 이미지가 우리의 참된 현실과 맺는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중에 가장 핵심적이라고 판단된 세 가지 관점을 추출하여 그 관점들에 각각 대응하는 글들을 제시하고,이 글들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시각을 폭넓게 열었다.
최완수의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앙리 르페브르의 '현대 세계의 일상성',그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각각 아주 다른 시각으로 이미지에 대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으며,이질적이지만 동시에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을 독해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이미지와 현실 및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한 모든 정신적 작업들에서 현실에 대한 반성적 이해 및 새로운 현실에 대한 동경을 찾아내고 창조적 변형의 노력들을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③사회적 언어로써의 웃음
2004년도 연대에서 출제된 '웃음'과 관련한 논제는 우리의 삶에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웃음,특히 유희적 웃음의 의미와 사회적 기능을 묻는 문제였다.
웃음은 자신 혹은 타자에 대한 풍자적 조롱이 될 수도 있고,별 의미 없이 생성된 말장난의 연속일 수도 있다.
또한 웃음은 단순한 개인적 쾌락효과 외에도 집단적 억압감으로부터의 해방,제도적 경직성에 대한 도전,금지된 욕구의 충족,부조리한 세계와 운명에 대한 조롱,진리의 간접적 소통과 같은 긍정적 기능을 갖는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 범람하는 온갖 유희적 웃음(코미디,농담,명랑 만화,매스컴의 인위적 폭소 장치 등)의 가치를 발견해 보는 것은 특히 오늘의 시점에서 의미 있는 화두다.
동시에 이 논제는 학생들에게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텍스트들을 지성적으로 점검하려는 태도와 소양이 존재하는 지의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교하게 고안된 문제였다.
또한 무의미한 웃음의 무조건적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권력을 비웃어선 안 되고 대통령을 안주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었던 권위주의 속에서 40여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억압당한 이 땅의 시민들은 고발과 비판을 통해 화해와 상생에 이르는 웃음의 기능을 망각한 지 오래다.
때문에 새로운 민주적 분위기 퍼져나가고 상생의 시대가 이야기되는 이 때에,웃음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활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권위에 가려진 삶의 소소한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 이윤호 초암아카데미 대표강사 >
◆ 약력
△ 문화평론가. 성공회대 신방과 외래교수.
△ Echoam 온라인 논·구술강사.메가스터디 온라인 논구술강사
△ 대중문화 계간지 "리뷰"주간
◆ 저서
<신세대 혼돈과 질서>
<콕콕 수시전형 길잡이>
<단단하게 당당하게>논구술 시리즈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