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비로소 국민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 위헌심판 등 최근 잇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헌법심판은 이제 국민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가 됐다.

특히 검찰이 혐의 없다며 그냥 덮어버리는 불기소 처분이 헌법재판소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이 크게 신장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헌법심판의 증가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나 입법활동에 대한 지나친 불신을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얼마나 늘었나

1990년대까지 연평균 400∼500건이던 헌법심판 사건은 2000년대 들어 매년 1000건을 넘어서는 등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서만도 지난 7월까지 헌법재판소가 접수한 심판사건은 835건이다.

이런 추세로 갈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접수된 총 1214건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탄생한 1988년의 경우 접수 건수는 총 39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처리된 건수는 13건이고 나머지 26건은 '미제'로 그 해 이후로 처리가 넘어갔다.

당시 9명이던 헌법재판관 숫자는 지금도 변함없다.

헌법심판 청구가 최근 얼마나 폭증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왜 늘어나나

헌법소원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헌법심판 사유는 유형별로는 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권한쟁의,헌법소원 등 5개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지난 7월 말까지 접수된 헌법심판 사건 835건 가운데 헌법소원은 812건으로 97.2%를 차지한다.

위헌법률 심판은 17건,권한쟁의는 6건이었다.

헌법소원은 청구 이유에 따라 또다시 2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헌법재판소법은 68조1항에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았을 때',68조2항에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의 제청신청이 기각됐을 때' 각각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창설 이후 지금까지 접수된 누적 헌법심판 건수 총 1만1607건 중 68조1항 사항이 9718건으로 83.7%를 차지한다.

공권력이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말하는데,특히 행정권에 속하는 검찰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했을 때 이를 헌법재판소에 호소하는 경우가 헌법소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불기소처분'은 검찰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기소유예나 무혐의처분 등으로 자체 종결하는 사건을 말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건이 종결된 것이 부당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 사건을 다시 검토해 달라는 취지에서 신청하는 것이다.

결국 검찰의 처분에 대한 불만이 헌법소원의 형태로 나타나 헌법재판소를 바쁘게 하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헌법소원의 형태로 나타날 때도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사회적 갈등해결 시스템상의 문제일 수도

헌법심판의 증가는 헌법상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최대한 이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성숙된 시민의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갈등을 대화나 타협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방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송만능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다.

지난해의 경우 고소·고발사건은 상반기에만 33만6464건이 접수됐다.

이는 전년 동기 31만2922건보다도 7.5% 증가한 수준이다.

이 중 60%는 죄가 안되는 무혐의 기소유예 각하 등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김병일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