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버진그룹 이끄는 '리처드 브랜슨' 회장] 난독증 딛고 기업 일궈

선천성 장애인 난독증(難讀症)으로 재무제표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장애인.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없이 맨손으로 거대 기업을 탄생시킨 의지의 주인공.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54)은 자수성가한 대표적 기업가로 꼽힌다.


그는 역경을 딛고 32억달러(약 3조2000억원)의 재산을 모아 영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됐다.



◆공부보다는 스포츠에 더 열중했던 브랜슨


그는 운동을 몹시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열여섯 살 때 학업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다.


첫 사업은 '스튜던트'란 학생 잡지였다.


난독증으로 고통받았던 그가 선택하기 매우 어려운 분야였지만 그의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었다.


편집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됐다.


대신 그는 광고와 판매 등을 전담했다.


잡지의 주 내용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불합리한 관행 등을 비판하는 것.일종의 저항잡지였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이 잡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브랜슨은 학생 잡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잡지 판매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학생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사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또 음악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특히 우편으로 주문받아 음반을 싼 값에 판매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점도 파악했다.


그는 1971년 동료들과 함께 우편 할인판매를 시작한다.


회사 이름은 처음 사업을 해본다는 뜻에서 '버진(virgin·처녀)'이라고 붙였다.


버진그룹의 시초인 버진레코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스튜던트에 광고를 내자마자 주문이 쏟아지는 등 사업은 순항했다.


◆음반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


그러나 복병이 생겼다.


우체국이 파업을 해 버린 것.우편 판매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브랜슨은 다른 대형 음반 판매업체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매장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또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 스타벅스가 나오기 한참 전 브랜슨은 이미 '음반'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된다.


전략은 적중했다.


버진레코드의 매출은 대형 레코드사를 압도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음반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그는 나이트클럽,영화 배급,게임 소프트웨어,호텔에 이어 항공사업까지 손을 댔다.


그가 설립한 버진애틀랜틱은 기존 항공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출발했다.


일등석을 없애고 비즈니스 클래스 요금대의 '어퍼 클래스(upper-class)'를 선보였다.


이 어퍼 클래스 승객에게는 다른 항공사 1등석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내에서 목욕 헤어컷 안마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런 혁신적 서비스를 통해 버진애틀랜틱항공은 각종 상을 휩쓸며 버진이란 브랜드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또 영국 내 2위 항공사로 일궈 항공업 진출에 반대했던 모든 사람이 잘못 판단했음을 입증해 보였다.


◆250여개 계열사 거느린 거부


이후 브랜슨은 버진이란 브랜드로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에 나선다.


인터넷 식품 금융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소유한 계열사는 무려 250개가 넘는다.


그러나 사업 다각화 방식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버진이란 브랜드 사용권을 주고 경영전략을 수립해 주는 대신 주식을 제공받는 방식'이었다.


고객에게 '색다른 가치'를 준다는 기업 브랜드와 명성을 팔아 사업을 넓혀 온 것이다.


브랜슨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최근 우주여행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선언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오는 2007년부터 2억원 정도를 내면 4분간 우주공간에서 무중력 상태를 체험할 수 있을 전망이다.


브랜슨은 어렸을 때 한 항공사 직원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충고를 들었다.


"바보가 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후 지금까지 그는 단 한번도 이 교훈을 잊은 적이 없다.


그의 인생 자체도 즐거움이고 경영철학도 즐거움이다.


유영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yooys@hankyung.com



■ 10실링 받으러 목숨 건(?) 수영


브랜슨은 어머니로부터 독립심과 도전의식을 배우며 자라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네 살 때 집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혼자 집에 돌아오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가 열두 살 때 80km나 떨어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 찾아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잘했다 리처드, 재미있었니?"라며 태연하게 맞이했다.


다섯 살 때 수영을 배운 과정은 브랜슨의 도전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족들과 함께 바다에 간 그는 고모가 이틀 안에 수영을 배우면 10실링을 주겠다고 하자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몇 시간을 혼자 헤엄쳤다.


그러나 끝내 수영을 배우는 데 실패하고 만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는 도로 주변의 강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워 달라고 떼를 썼다.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물 속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물살이 셌고 수영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진 위기의 순간,그는 발밑에 돌을 발견했다.


사력을 다해 돌을 박차고 솟구쳤으며 결국 그는 10실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저돌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학창 시절 그는 골칫거리 학생이었다.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자를 읽거나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로 학교 성적은 언제나 최하위권이었다.


대신 스포츠에 몰두해 친구들과 함께 팀을 구성,미식축구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학교 교장은 브랜슨이 "공부는 못하지만 큰 일을 저지를 인물"이라고 예언했고 이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