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경기가 예상보다 더디게 살아나고 있는 배경으로 '늘어나는 세금 및 사회부담금'을 꼽는 의견이 적지 않다.


내수경기가 살아나려면 소비가 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손에 쥐는 돈이 많아야 하는데 나라에서 걷어가는 세금이나 각종 부담금이 소비에 쓸 돈을 갉아먹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산층 소비능력 줄어든다] 세금.각종 부담금에 주머니 더 얄팍
요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금리도 경기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은행에 빚을 지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의 이자부담이 커져 소비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공장을 증설하려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을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위축된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물가마저 들썩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경기회복세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소비 옥죄는 세금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상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3년 동안 우리 경제는 연 평균 3.7%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3년간 누적으로는 10% 이상 경제가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인당 소비증가율은 오히려 연 평균 0.2% 감소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디론가 새고 있는 것이다.


내 치즈를 도대체 누가 옮긴 걸까.


주범(主犯) 중 하나가 세금을 포함한 각종 부담금이다.


재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1인당 국민부담금은 2001년 300만원을 넘은 뒤 △2002년 351만원 △2003년 383만원 △2004년 398만원 △2005년 426만원(잠정) △2006년 465만원(추정) 등으로 매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민부담금은 세금에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모두 더한 것이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으면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게 된다.


즉 소비가 감소하게 되고 이는 '기업수입 감소→투자 감소→경기 위축→세수 부족→국민부담금 증가' 등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크다.


◆물가 뛰면 소득증가도 허사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에서 한 농부가 삽을 사려고 수레에 돈을 잔뜩 싣고 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강도가 돈은 버리고 수레만 챙겨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굳이 구매력이란 딱딱한 용어를 들지 않아도 '돈의 절대 액수'보다는 '그 돈으로 뭘 살 수 있는지'가 중요함을 사람들은 경험으로 안다.


지난 3분기(7∼9월) 경제성장률(GDP 기준)이 예상보다 높은 4.4%로 나타났을 때 상당수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인데 무슨 딴 나라 얘기냐는 볼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런 미스터리를 풀어줄 열쇠 하나가 곧이어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라는 자료에 숨어 있었다.


'2005년 3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농림어가 제외)의 월 평균 소득은 294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1년 전보다 2.1%(6만1000원) 늘어난 수준인데,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3%)을 감안한 실질 소득은 249만3000원으로 되레 0.2%(5300원) 떨어졌다.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은 2002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라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소득이 늘어나긴 했지만 물가 상승폭에는 못 미쳐 소비심리를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부담스런 금리 상승세


시중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최근 들어 연 5.2%를 오르내리고 있다.


근 3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작년 말(연 3.28%)에 비해서는 1.94%포인트나 올랐다.


채권금리가 이처럼 큰 폭으로 뛰면 가계 및 기업들의 이자부담이 증가한다.


지난 10월 말 은행의 개인 대출 잔액은 300조4000억원.이 가운데 이자가 금리 움직임에 따라 오르내리는 변동금리 대출의 비중은 약 88%(264조원)에 달한다.


시장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이 2조6400억원 정도 늘어난다.


지난 1~2년간 초저금리 상황에서 과도하게 은행 빚을 낸 개인들이 금리 상승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안재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