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는 여러 나라들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세계화 속의 지역주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1980년대 말 출범했다.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인접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지역주의 성향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대응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발적 협력을 기초로 한 경제협력체

APEC은 한국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7개국,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등 환태평양 연안 2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경제 협력체로 출발한 APEC은 다른 국제기구와는 달리 독특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회원국을 국가(country)가 아니라 회원(member) 또는 경제체(economy)로 표기하고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회의도 정상회의라 하지 않고 APEC 경제 지도자 회의(Economic Leaders'Meeting)로 부른다.

대만과 홍콩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명칭 및 국기 사용마저 금지된다.

국제기구의 지위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APEC은 어디까지나 회원국의 자발적인 협력을 기초로 하고 있다.

회원국 대표의 전원 합의(consensus)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사무국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단계적인 제도화를 통해 협력 분야를 확대하는 조직 운영 방식을 택하고 있는 점도 독특한 특징이다.

◆합의사항은 상당한 구속력 발휘

APEC은 지역경제 협력을 위한 정책공조의 장(場)이다.

여기서 결정된 합의사항은 상당한 구속력을 갖는다.

1994년 인도네시아의 보그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선진국은 2010년까지,개도국은 2020년까지 역내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실현한다는 '보그르' 목표를 설정했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오사카 행동지침(OAA)을,96년에는 마닐라 실행계획(MAPA)을 채택하는 등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결속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이번 부산 APEC회의의 주제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다.

역내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위한 실무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정치적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점에서 향후 APEC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경제·통상과 관련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대한 APEC 차원의 기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역무역협정(RTA)과 자유무역협정(FTA)의 확산,경제기술 협력 및 경제양극화 해소 방안에도 초점이 모아져 있다.

◆반테러,조류인플루엔자 문제도 논의

최근에는 APEC의 관심 분야가 경제를 넘어 안보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반테러와 반부패,재난대응 외에도 엄청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다.

역내 국가 간의 대응조치와 상호협력 등 정책공조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인 재앙 가능성이 APEC 회원국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로 작용하는 셈이다.

주최국인 한국으로서는 이번 회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선 정상회의가 제5차 북핵 6자회담과 맞물려 열려 한반도 정세를 바꾸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정상들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 모여 양자회담을 가짐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회의는 또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더불어 부산 지역경제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회의 기간 중 각국 정부 대표단 3500여명을 비롯 1만여명이 부산에 집결할 예정이다.

관광수입과 각종 행사 유치에 따른 생산 유발 효과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등 1조원에 가까운 경제효과가 기대된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번 APEC정상회의는 한국 외교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긋는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