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 관련 대책은 '통화 조절'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미국이 처음부터 통화정책에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대규모 예산을 집행하는 재정 확대 정책이나 세금정책을 중시한 때도 있었다.

미국이 통화정책을 재정정책보다 더 중시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고,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위상도 그때 이후 재무부보다 높아졌다.


◆재정정책이냐,통화정책이냐

193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성장과 물가안정을 위해 어떤 정책이 더 유효한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사이에서 갈등했고,균형 있는 정책 실행을 위해 노력해왔다.

우선 개념부터 살펴보자.재정정책은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거둬들이고,이 돈을 어떻게 지출하느냐를 다루는 정책이다.

정부가 적자 재정을 통해 지출을 늘릴 수도 있고,흑자재정을 통해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

반면 통화정책은 통화량이나 금리를 통해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을 말한다.

◆재정정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 극복

미국에서 경기조절 대책으로서의 재정정책은 1930년대 미국 경제가 대공황으로 휘청거릴 때 처음 등장했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이론이 바탕이 됐다.

정부지출을 늘려 사회 전체의 수요를 늘리고 생산활동을 자극하는 식으로 불황을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대공황에서 탈출하고 2차대전을 거치면서 케인스 이론은 전세계 경제학계를 사실상 장악했다.

미국은 세계 경제가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1960년대에도 '확장적 재정정책'에 집착했다.

예컨대 64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빈곤층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 와중에 73년과 78년 1,2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유가는 공산품 가격을 끌어올렸고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임금 삭감과 가격통제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무리한 적자재정(재정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짜기 시작했다.

재정 지출을 늘리면 경기가 살아나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물가가 오르는 동시에 실업이 늘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탄생한 것이다.

◆물가 급등으로 경제불안 가중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 경제학파의 실패로 받아들여졌다.

빈자리는 1950~60년대 탄생한 통화주의 학파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정과 통화정책이 확장적이든 긴축적이든 관계없이 정책효과가 적다"고 비판했다.

인플레이션을 긴축적인 재정정책으로 막는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 시장에선 물가가 떨어지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급중시 학파의 등장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공급중시학파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자극하기보다는 공급 쪽에 충격을 줘 물가를 내리고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세금을 내리면 경제주체들이 더 많이 일하게 되고,그 결과 소득이 늘어나는 동시에 재정 수입도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재정 수입이 늘어나지 않았다.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에서 통화정책이 경제정책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재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 할 경우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인상해야 하는데,둘 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90년대 말 미국은 '인플레 없는 성장'이라는 신경제를 맞는다.

정보기술(IT) 분야의 급격한 생산성 혁신이 그 바탕이 됐다.

그린스펀은 신경제 호황을 무리 없이 이끈 동시에 물가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