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 로스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직후인 1998년 초였다.

당시 로스는 인수 합병과 구조조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던 로스차일드라는 투자회사의 사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방한 목적은 당시 국내 재계 12위 그룹으로 도산 위기에 몰린 한라그룹에 자금 지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달러 한 푼이 아쉬웠던 당시에 무려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라는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한라그룹은 물론 다른 대기업들도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통령부터 경제부처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를 만나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자문을 한 공로로 그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로스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구조조정의 황태자' 행세를 하며 여러 기업 재편 과정에 적극 관여했다.

한라그룹은 물론 IMT2000사업과 현대투신 매각,기아특수강 매각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로스는 당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마련한 공적자금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한라에 빌려주기로 한 10억달러 중 극히 일부만 도입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다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듣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떠나면서 그는 "한국은 아직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수준이 되지 않은 국가"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과연 선구자였는지,아니면 한국에서 '단물'만 빼먹은 장사꾼이었는지 아직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