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 왜 벌어지지?] 교육·의료 등 기회 불평등…격차 확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문제는 비단 한 나라 안에서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개인과 개인의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나라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빈부격차가 발생한다.


자원과 기술,자본력과 노동력의 차이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만들어내고,그 사이에 있는 평범한 국가들을 서열짓는다.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재생산되고,때로는 그 내부에서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전세계적인 빈부격차의 실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개발 보고서 2006'은 이러한 빈부격차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나라 안에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현상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성장으로 '빈곤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에서 빈부격차는 계속 심화되고 있다.


2005년 10월 어느 날.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흑인 여자아이 마리아가 태어난다.


같은 날 이웃 수도 케이프타운에서는 찰스라는 남자아이가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다.


둘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까.


◆평균수명 28년이나 차이


마리아는 첫 돌이 되기 전에 전염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다.


다행히 살아남아 학교에 들어가지만 1년 만에 자퇴를 하고 만다.


어린 마리아까지 돈을 벌어야 가족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찰스는 부모가 예방주사를 맞힌 덕에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자란다.


대학 진학은 안 했지만 고등학교까지 정규 교육을 받는다.


마리아는 40세에 에이즈에 걸려 죽는 반면 찰스는 68세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산다.


남아공의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출생한 흑인 여자 아이가 첫 돌 이전에 죽을 확률은 대도시 백인 남아보다 두배 이상 높은 7.2%다.


남아공에서는 대도시 백인 남자아이가 평균 12년간 정규 교육을 받는 반면 흑인 여자아이는 잘해야 1년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지난해 말 조사에서 남아공인구 4600만명 중 에이즈 바이러스(HIV) 양성반응자는 최대 65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 피해는 기초적인 성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만큼 교육수준이 낮고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20∼29세 흑인 여성의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물론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극단적인 경우'다.


남아공은 기득권을 가진 백인들이 실시했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때문에 지금도 계급의 잔재가 남아있다.


◆빈부격차는 전세계적인 현상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의회예산국은 1979년부터 2001년 사이에 소득 기준 상위 1% 가구의 소득이 139%나 증가했으나 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9%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는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다.


중간 계층의 소득도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물론 빈부격차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모두가 부(富)를 똑같이 나눠 갖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산주의 사회가 실패한 데서 볼 수 있듯이,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 경쟁 심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성장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에 사회는 하향 평준화되기 십상이다.


◆기회 분배의 불공평 확대가 큰 문제


문제는 부가 계급처럼 세습됨으로써 가난한 사람은 능력이나 노력 여하와 상관 없이 태어날 때부터 확률적으로 부자와는 다른 운명을 갖는다는 데 있다.


극빈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태생적으로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식 세대로 이어질 확률은 45∼60%에 달한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1963∼68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95∼98년 소득을 조사한 결과 부모 소득이 하위 25%인 사람은 자신의 소득이 상위 50%에 들 확률이 32% 에 불과하다.


반면 하위 50%에 포함될 확률은 68%로 훨씬 높다.


계급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부의 세습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세계은행은 '불공평한 기회의 분배'를 이유로 꼽는다.


그 핵심에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있다.


어느 사회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소득 수준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대학 등록금이 물가 상승률보다 매년 두배 이상 빨리 인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산층 이하 사람들의 대학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일부 사립대학 연간 수업료는 중산층 가계 연소득(4만4389달러·4600만원)을 추월했다.


연소득을 모두 쏟아부어도 한 명의 자녀를 사립대학에 보내기가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의 경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합쳐 1년에 4만4580달러가 든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