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10월25일자 A1면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로써 한국의 신용등급은 피치가 매긴 등급을 기준으로 할 때 중국보다 한 단계 높고 대만과는 같은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AA-)에 비해서는 여전히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피치는 24일 "지난달 북한이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핵무기 계획 포기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안보 위험이 감소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한 것은 2002년 6월 'BBB+'에서 'A'로 한 단계 올린 뒤 3년4개월 만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 이어 피치(Fitch)도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가 점차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 여건 개선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피치의 이번 신용등급 조정을 계기로 국가 신용도에 대해 살펴보자.


◆국가 신용등급은 투자 판단의 근거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 나라에 투자하면 안 된다'거나 '이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안전하다'는 등의 평가는 국가 신용등급에서 나온다.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기가 어렵다.

신용평가회사들이 매기는 성적표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에 따라 외채 지급 이자도 달라지게 된다.

신용도가 하락할 경우 외국 투자자들이 자금 대출을 꺼리고 대출 금리를 올리게 된다.

개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신용평가도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 신용도가 낮으면 우량 기업도 따라서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BBB+'(S&P 기준)에서 'A-'로 한 단계만 올라가도 차입 금리가 0.35% 떨어져 기업들의 해외 차입비용이 연간 5억달러 정도 절약된다는 게 정부측 분석이다.

국가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치 체제의 안정성과 정통성,국제 금융시장과의 통합도,국가 안보상 위험요인 등 '정치적 요소'와 소득 수준 및 분포,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공공채무 부담,외채와 외환 보유액 수준,대외 채무불이행 경험 등 '경제적 요소'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정학적 위험 요인으로 분류되는 북한의 핵 문제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는 무디스,S&P,피치

미국에서 처음으로 신용 평가를 실시한 기업은 무디스다.

1900년 존 무디(John Moody)에 의해 설립됐다.

이 회사는 1909년 200여개 철도 채권에 대한 등급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간판 신용평가 회사로 자리 잡았다.

이 회사는 국가부문과 은행 채권 어음 분야에서 신용 등급을 발표하고 있으며 경제 변수 외에도 정부 규제,정치 상황,사회·문화적 요인 등을 폭넓게 평가하고 있다.

무디스의 뒤를 이어 푸어스(Poor's,1916년 설립)와 스탠더드 스태티스틱스(Standard Statistics,1924년 설립)가 각각 회사채 신용 평가를 시작했으며 이들 회사는 1941년 합병돼 S&P로 거듭났다.

피치는 650여개 비(非) 미국계 금융회사 및 50여개국의 신용등급 평가로 유명했던 IBCA사와 재정 평가 등으로 잘 알려졌던 피치사가 1997년 합병한 회사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로 신용등급 상승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어떤 수준인가.

피치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로 평가했다.

2002년 6월 'BBB+'에서 'A'로 한 단계 올린 뒤 3년4개월 만에 또다시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것은 제4차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골자로 하는 공동 성명이 채택되면서 한반도의 핵 위험이 감소한 점 등을 고려한 때문이다.

한국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5% 선에 그쳐 동일 등급 국가의 평균치를 밑돌고 있으며 수출이 GDP의 40% 선에 육박해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는 점도 감안됐다.

피치는 우리나라의 등급을 홍콩보다는 한 단계 낮지만 중국보다는 한 단계 높고 대만과는 같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했다.

외환 보유액이나 금융 시스템이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S&P도 지난 7월 한국의 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미국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디스는 우리의 신용등급을 'A3'로 매기고 있는 데 비해 대만은 우리보다 세 단계 높은 'Aa3'로,홍콩은 두 단계 높은 'A1',중국은 한 단계 높은 'A2'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북핵 문제를 여전히 핵심 변수로 분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

이번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피치의 등급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아직도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S&P와 무디스의 경우는 당시 수준에 비해 여전히 두 단계나 처져 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대만이나 중국과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가 경제규모는 물론 1인당 국민소득이 외환위기 때보다 크게 늘어났는 데도 국가 신용등급은 오히려 더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문제다.

국가 신용등급을 하루빨리 외환위기 이전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피치는 신용등급을 올리면서도 올해 3.5%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 풀이 >

△국가 신용도=국가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과 의사 수준을 표시한 등급이다.

엄밀하게 정의하면 정부 발행 외화표시 장기채권의 신용등급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입 금리나 투자 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신용등급 표시법=무디스는 Aaa에서부터 Baa까지를 투자적격 등급으로 두고 있다.

Ba 이하는 투자 부적격 등급이다.

무디스는 동일 등급 내에서도 1·2·3으로 나누고 있다.

예컨대 A1,A2,A3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S&P 기준에서는 AAA에서부터 BBB까지 적격,BB 이하가 부적격이다.

동일 등급 안에서는 +와 -로 우열을 가른다.

예를 들어 A+,A,A- 식으로 판정한다.

현재 등급에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으면 '긍정적(positive)',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것 같으면 '안정적(stable)',하향 조정될 것 같으면 '부정적(negative)'이라는 표시를 해당 등급 뒤에 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