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지난 10월18일 국제적 압력에 못이겨 조류독감 치료약 '타미플루'의 獨占生産 판매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회사들도 이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줄테니 대신 로열티를 지불하라고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조류독감이 유럽으로 본격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외국 정부와 제약사들이 특허권을 포기해 대량 생산의 길을 트라고 로슈를 압박한 결과다.
타미플루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유일한' 조류독감 치료약이다.
기업의 수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로슈는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익인 것처럼 보인다.
약이 최대한 잘 팔려야 주주 이익 극대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책무에 충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평균 1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신약 개발 비용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슈가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생명 안보라는 측면에서 갖가지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이 회사 혼자 10년 동안 쉬지 않고 공장을 가동해도 전 세계 인구의 20%를 治療할 분량밖에 못 만든다는 것과 비싼 약 값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이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이유에서다.
독점을 포기한 로슈의 결정은 옳을 것이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
기업의 책임은 '주주들을 위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사회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 그 '사회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끝까지 死守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수익성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주주들에게 배당을 할 수 없고,새 일자리도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제약회사의 역할은 약을 만들어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외부 요인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증가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는 이미 개발한 약을 꾸준히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더 좋은 약을 계속 개발해 내놓아야 한다.
미국 터프츠대학은 2003년 기준으로 신약 하나를 개발해 상품화하는 데 평균 8억9700만달러가 든다는 통계를 내놓은 적이 있다.
우리 돈으로 무려 9000억원에 달한다.
이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초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나서도록 督勵하는 제도가 바로 신약 특허권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통해 10∼20년 동안 신약에 대한 독점 생산 판매권을 보장받고,이 기간에 개발 비용을 최대한 뽑아내 다음 신약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한다.
제약업계는 영원히 독점 생산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약속 기간이 지나 특허권이 소멸되면,어떤 기업이든 複製약을 만들 수 있다.
미국제약협회가 최근 로슈에 특허권을 抛棄하라는 압력이 가해지자 "제약사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다"는 이유로 반발한 데는 일리가 있다.
로슈가 특허권을 포기하면 당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싼 값에 타미플루를 구입함으로써 조류독감의 잠재적 위협에서 보호받을 수 있겠지만,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신약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공익단체는 다르다.
존재 자체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공익단체는 기부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은 적극적으로 돈을 벌어야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제약사가 공익단체처럼 당장 공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신약 제조 특허권을 포기해 버린다면 인류는 향후 더 무서운 병이 발생했을 때 맞서 싸울 劃期的인 신약을 공급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독점권 포기가 더 많은 이익 창출할 수도'
하지만 로슈가 타미플루의 독점 생산 판매권을 포기한 이유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기업의 屬性에서 찾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특허권을 고수하는 것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조류독감이 동남아에서 동유럽으로 확산돼 루마니아와 터키에 이어 그리스에서까지 의심 사례가 나온 상황에서 로슈가 끝까지 버틴다면 기업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로슈는 독점 체제를 이용해 타미플루를 10알당 4만2000원이라는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약 값이 없어 조류독감에 걸려도 치료약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류독감이 확산돼 빈곤층의 피해가 커질 경우 로슈는 돈밖에 모르는 몰인정한 기업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회사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로슈는 특허권에 대해 보다 柔軟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수한 상황이라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약사 입장에서 특허권은 신약 개발 비용을 보상받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조류독감처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전염병이 퍼지는 특수 상황에서는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줄도 아는 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로슈는 타미플루의 독점 생산 판매권을 포기해 이 약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국제 사회와 협력해 인류의 중대 위기에 맞선 기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는 수억달러가 드는 신약 개발 비용 못지 않은 기업 이미지 홍보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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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읽기
ㆍ獨占生産 (독점생산)
ㆍ治療 (치료)
ㆍ死守 (사수)
ㆍ督勵 (독려)
ㆍ複製 (복제)
ㆍ抛棄 (포기)
ㆍ劃期的 (획기적)
ㆍ屬性 (속성)
ㆍ極貧層 (극빈층)
ㆍ缺陷 (결함)
ㆍ柔軟 (유연)
다른 회사들도 이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줄테니 대신 로열티를 지불하라고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조류독감이 유럽으로 본격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외국 정부와 제약사들이 특허권을 포기해 대량 생산의 길을 트라고 로슈를 압박한 결과다.
타미플루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유일한' 조류독감 치료약이다.
기업의 수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로슈는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익인 것처럼 보인다.
약이 최대한 잘 팔려야 주주 이익 극대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책무에 충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평균 1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신약 개발 비용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슈가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생명 안보라는 측면에서 갖가지 논란을 일으켜 왔다.
이 회사 혼자 10년 동안 쉬지 않고 공장을 가동해도 전 세계 인구의 20%를 治療할 분량밖에 못 만든다는 것과 비싼 약 값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이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이유에서다.
독점을 포기한 로슈의 결정은 옳을 것이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
기업의 책임은 '주주들을 위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사회적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 그 '사회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끝까지 死守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수익성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주주들에게 배당을 할 수 없고,새 일자리도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제약회사의 역할은 약을 만들어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외부 요인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증가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는 이미 개발한 약을 꾸준히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더 좋은 약을 계속 개발해 내놓아야 한다.
미국 터프츠대학은 2003년 기준으로 신약 하나를 개발해 상품화하는 데 평균 8억9700만달러가 든다는 통계를 내놓은 적이 있다.
우리 돈으로 무려 9000억원에 달한다.
이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초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나서도록 督勵하는 제도가 바로 신약 특허권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통해 10∼20년 동안 신약에 대한 독점 생산 판매권을 보장받고,이 기간에 개발 비용을 최대한 뽑아내 다음 신약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한다.
제약업계는 영원히 독점 생산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약속 기간이 지나 특허권이 소멸되면,어떤 기업이든 複製약을 만들 수 있다.
미국제약협회가 최근 로슈에 특허권을 抛棄하라는 압력이 가해지자 "제약사의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다"는 이유로 반발한 데는 일리가 있다.
로슈가 특허권을 포기하면 당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싼 값에 타미플루를 구입함으로써 조류독감의 잠재적 위협에서 보호받을 수 있겠지만,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신약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공익단체는 다르다.
존재 자체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공익단체는 기부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은 적극적으로 돈을 벌어야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제약사가 공익단체처럼 당장 공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신약 제조 특허권을 포기해 버린다면 인류는 향후 더 무서운 병이 발생했을 때 맞서 싸울 劃期的인 신약을 공급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독점권 포기가 더 많은 이익 창출할 수도'
하지만 로슈가 타미플루의 독점 생산 판매권을 포기한 이유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기업의 屬性에서 찾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특허권을 고수하는 것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조류독감이 동남아에서 동유럽으로 확산돼 루마니아와 터키에 이어 그리스에서까지 의심 사례가 나온 상황에서 로슈가 끝까지 버틴다면 기업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로슈는 독점 체제를 이용해 타미플루를 10알당 4만2000원이라는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약 값이 없어 조류독감에 걸려도 치료약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류독감이 확산돼 빈곤층의 피해가 커질 경우 로슈는 돈밖에 모르는 몰인정한 기업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회사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로슈는 특허권에 대해 보다 柔軟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수한 상황이라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일자리 창출과 세금 납부'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약사 입장에서 특허권은 신약 개발 비용을 보상받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조류독감처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전염병이 퍼지는 특수 상황에서는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줄도 아는 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로슈는 타미플루의 독점 생산 판매권을 포기해 이 약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국제 사회와 협력해 인류의 중대 위기에 맞선 기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는 수억달러가 드는 신약 개발 비용 못지 않은 기업 이미지 홍보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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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읽기
ㆍ獨占生産 (독점생산)
ㆍ治療 (치료)
ㆍ死守 (사수)
ㆍ督勵 (독려)
ㆍ複製 (복제)
ㆍ抛棄 (포기)
ㆍ劃期的 (획기적)
ㆍ屬性 (속성)
ㆍ極貧層 (극빈층)
ㆍ缺陷 (결함)
ㆍ柔軟 (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