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 모터스(GM)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GM의 실적 악화는 전혀 새로운 뉴스가 아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한 때 자회사였던 미국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델파이의 파산보호 신청이 모기업이었던 GM으로 불똥이 옮겨붙고 있기 때문이다.

델파이와 GM의 밀접한 관계가 집중 부각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GM의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GM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추가 하향조정했다.

치솟는 고유가로 GM의 주력 차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도 냉랭하다.

도요타와 현대자동차 등 아시아 메이커들의 공세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GM은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가.

◆GM,델파이 파산 불똥튈까 노심초사

델파이는 1999년 GM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이후에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델파이의 최대 고객이기도 한 GM은 분사 당시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퇴직연금 수급을 책임지기로 합의했다.

이 조약이 부메랑으로 GM에 돌아왔다.

델파이 노조원의 퇴직연금으로 GM이 떠안아야 할 부담금은 110억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다.

GM은 "델파이 노조원의 퇴직연금 수급 책임은 제한적이며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이미 싸늘해져 있다.

'퇴직금 대신 갚아주기'의 차원을 넘어 델파이 파산으로 부품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부품구입 가격이 오를 위험도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GM의 경영 상황은 최근들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북미 사업 부문에서만 무려 25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하반기 영업 상황도 신통치 않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GM의 미국 내 판매는 전년 동월대비 24% 급감했다.

지난해 이미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GM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S&P 피치 등 신용평가 회사들은 GM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쓰레기(junk·정크) 수준의 등급을 받은 것이다.

GM 입장에서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이자비용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과도한 복지비용과 시장예측 잘못으로 경영난

GM은 차를 한 대 만들 때마다 1600달러 정도의 '유산 비용(legacy cost)'을 지급하고 있다.

유산비용이란 회사가 종업원 뿐 아니라 퇴직자,그리고 그 가족의 평생 의료보험과 연금 비용을 말한다.

유산비용으로만 연간 56억달러(약 5조6000억원)를 지출해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노조와 맺은 노동계약 때문에 경기 상황에 따라 신속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힘들다.

젊고 비노조화된 일본 자동차업체들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는 얘기다.

경직된 조직문화도 추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50개국 36만명의 '대군'을 운영하다보니 현장 상황이 본부까지 전달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마론 같은 소형 캐딜락은 시보레와 시장이 겹쳐 판매 부진이 이어졌으나 일선 현장상황은 최고경영진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고,결국 소형 캐딜락 사업의 완패로 귀결됐다.

시장의 수요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점도 GM 몰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차량 등 미래 연료절약형 차량 개발에 힘을 기울일 때 GM은 연비가 떨어지는 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생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급격한 유가 상승을 맞아 소비자들은 대형 SUV 차량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GM은 직격탄을 맞았다.

거듭되는 할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GM 자동차 판매량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를 잘 대변한다.

◆GM의 미래는 불투명

앞으로 GM과 미국 자동차업계는 어떻게 될까.

델파이의 로버트 밀러 사장은 "지금과 같은 임금 수준이라면 GM은 파산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부품 회사들이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미국 내 실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세기의 영광을 다시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M이 고(高)비용 저(低)효율 구조를 타파하지 못한다면 미래 역시 없다"고 경고했다.

유영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