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찾은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조류독감은 사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바이러스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염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런 사태를 맞게 되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는 지금 신종 전염병에 대한 '공포증'에 걸려 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조류독감 등이 잇따라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과학자들은 인류에게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처럼 전염성 질병으로 인해 인류가 '공황' 상태로까지 몰리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 과학자들은 신종 바이러스 탄생으로 인류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로 확산되는 조류독감

동남아시아에서 6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시아 조류독감은 유럽으로 넘어갔다.

유럽연합(EU)은 최근 터키에서 발견된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H5N1'형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H5N1이 아시아 외의 지역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는 또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조류독감 의심사례도 양성반응을 보였다"며 이 역시 H5N1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지난 7월에는 러시아에서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금류가 집단 폐사하기도 했고 중동 지역에서도 야생오리 집단 폐사 등 조류독감 의심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철새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유럽 등 각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 역시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악의 경우 미국에서 850만명이 조류독감에 걸려 입원하고 190만명이 숨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근 세계 80여개국 대표단과 함께 국제 조류독감 대책회의를 열어 조류독감 차단 방안을 논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현대 사회의 산물(?)

지난 2003년 홍콩에서 처음 발견된 사스는 700여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사스의 원인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야생 동물에게서 처음 옮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 역시 닭이나 철새 등에서 전염된다.

소에게 걸리는 광우병이 인간에게 나타난 사례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질병들은 동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등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런 바이러스들이 갈수록 강력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동물 바이러스의 잇따른 변이를 경고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축산과 비위생적인 사료,항생제 남용 등이 동물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치명적인 방향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학의 이안 거스트 교수는 "동물 바이러스가 사람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등 각종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물론 인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만약 치명적이고 아주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신종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급습할 경우 우리 인류는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