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달 향후 7년 동안 35조원을 투자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지금 반도체 1위 기업은? 미국의 인텔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13년째 1위 자리를 지키며 반도체 신화를 이뤘지만 아직까지 인텔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인텔은 세계 반도체 업계의 공룡 기업이다.

전 세계 모든 PC의 90%가 펜티엄 프로세서 등 인텔의 마이크로 칩을 장착하고 있을 정도다.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인텔을 일군 사람이 바로 앤디 그로브이다.

◆인텔제국 세운 유대인 이민자

그로브는 인텔의 창업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창업 공신이지 창업자는 아니다.

인텔은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창업했다.

이들은 창업 후 곧바로 그로브를 영입했다.

그로브는 인텔에 합류할 때 노이스와 무어보다 아래 직위를 받았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실질적으로 인텔을 장악해 최고경영자(CEO)와 다를 것 없는 지위를 누렸다.

1979년엔 인텔 사장에 올랐고 1987년 CEO가 됐다.

1997년 고든 무어에 이어 회장이 된 그로브는 이듬해 크레이그 배럿에게 그 자리를 넘겼다.

그로브는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앤드라스 그로프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독일이 헝가리를 침공했을 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숨어 지내야 했다.

1950년대 부다페스트에서 암울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1956년 헝가리 10월 혁명이 실패한 직후 무일푼으로 미국 이민길에 오른다.

학비를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로브는 1963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페어차일드반도체를 거쳐 결국 인텔 제국을 세웠다.

◆그로브의 법칙

'오직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 그로브가 30년간 인텔을 지배하면서 줄곧 강조한 원칙이다.

흔히 '그로브의 법칙'으로 통하는 이 구호는 인텔의 기업 문화로 남게 됐다.

그로브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도 회사 걱정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서 회사를 둘러볼 정도로 일에 집착했다.

또 젊은 시절부터 그의 업무 스타일은 엄격하고 꼼꼼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에 미쳐 확실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행동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쪽을 택했다.

형식보다는 실질을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도 그로브의 특징이다.

그는 회사 내에서 지위가 높아져도 이 같은 방식과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운전 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차를 몰았고 사원들과 똑같은 일반 주차장에 선착순으로 차를 세웠다.

출퇴근할 때는 모든 임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보안 검사를 받았고 사무실도 일반 직원들의 것과 같은 크기로 꾸몄다.

그로브는 자신의 이런 방식과 관련, "직원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인텔에서는 지식으로서의 권력을 가진 사람과 높은 지위로 인해 권력을 가진 사람을 매일 섞어서 배치한다"고 설명한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생각이나 의견을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인텔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올바르게 내릴 수 있게 유도하기 위해서 자신부터 앞장선다는 얘기다.

◆확실한 신상필벌

그로브는 직원들의 목표 관리에도 열성적이었다.

개인별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 가는 상황을 정기적으로 측정해 이를 관리하는 '인텔의 목표관리 제도(임보스·IMBOS)'로 조직을 이끌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 임보스는 회사가 자신들을 최대한 쥐어짜는 통제술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임보스에는 확실한 보상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는 직원들이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자극제가 됐다.

그로브는 성공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실패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는 원칙을 확고하게 지켰다.

대표적인 보상 제도는 스톡옵션이었다.

1971년 증시에 상장할 때 주당 23.5달러였던 주가가 1993년엔 4385달러로 치솟아 스톡옵션은 인텔 직원들에게 일할 동기를 충분히 부여했다.

실제로 인텔 직원 가운데 1000명 이상이 스톡옵션으로 100만달러 이상을 벌었다.

'치솟는 주가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처럼 그로브는 스톡옵션을 앞세워 직원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