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혁깃발 올렸다] 작은 정부로 재정적자 축소 '안간힘'

9월11일 실시된 중의원 선거(한국 국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이끄는 연립 여당은 대승을 거뒀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자민당은 국회 480석중 3분의2가 넘는 327석을 획득했다.


일본군을 창설할 수 있는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하며,개혁 정책에 필요한 법률 개정 이나 입법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의석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압승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내세운 '구조 개혁'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유권자들은 현재대로 가면 일본이 세계 2위 경제 선진국에서 '2류 국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지만,경제 발전을 거듭해 1980년대 말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게 됐다.


그러나 1990년부터 시작된 버블(거품)경제 붕괴 후 1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어왔다.


2003년 상반기부터 조금씩 경제가 회복되면서 일본내에서는 국가 경쟁력을 다시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지지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그동안 전직 총리들도 '개혁'을 외쳐 왔으나 기득권 세력인 정치가나 관료들의 벽에 부딪쳐 번번히 좌절됐다.


◆'작은 정부'와 '민영화'가 개혁의 골격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8월 '우정 민영화' 법안이 집권당내 반대 세력에 의해 부결되자 중의원을 해산했다.


개혁 법안인 '우정 민영화'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자신을 밀어달라고 호소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기간중 정권 공약을 통해 향후 개혁 방향을 밝혔다.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지방으로 권한을 넘기겠다"고 강조했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 공무원 수를 줄이고,국영기업을 민영화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집권 자민당은 선거 승리후 10월중 '우정 민영화'법안을 통과시킨 후 공무원 축소를 골자로 한 행정 개혁,2010년대 초 재정수지(국채 이자 제외)를 흑자로 만드는 재정 개혁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구조 개혁의 최종 목표가 재정 건전화임을 분명히 했다.


◆누적된 적자로 고통을 겪는 일본


일본 정부가 구조 개혁의 최종 목표로 재정 건전화를 내세울 만큼 일본의 재정 상태는 심각하다.


흔히 일본은 '부자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가 발행한 국채 잔고는 6백87조엔,지방채와 차입금까지 합치면 1000조엔이 넘는다.


국채만을 기준으로 해도 GDP(국내총생산)의 1.7배에 달한다.


개인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상황이 지속되면 신용 불량자가 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세수보다 세출이 많은 재정 수지 적자 상태를 끌고갈 수는 없다.


게다가 일본은 2006년부터 인구감소 시대로 접어든다.


고령자에 대한 연금 지급 등으로 정부 지출은 늘어나지만,일하는 젊은층이 줄어들어 세입이 줄어드는 구조가 된다.


지금까지 적자 재정을 떠받혀온 가계 저축률도 떨어질 게 분명하다.


정부 추산으로도 가계 저축률은 2010년께 GDP대비 2.5%선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일본의 국채 잔액은 GDP 대비 170%수준에 달해 금리를 2%로 가정하면 국가는 매년 이자 지급을 위해 GDP대비 3.4%의 차입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의 재정 구조로는 원리금 상환은 커녕 국내 자금으로는 이자를 갚기조차 어렵다.


결국 일본은 국채를 외국에 팔아 외국 자금을 끌어와야 국가 파산을 피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2010년께 이자 지금을 제외한 재정수지 균형을 내걸었지만 계획대로 재정 지출을 줄인다 하더라도 이자 지급 부문은 외자에 의존해야 한다.


고이즈미 내각이 우정 민영화 등을 통해 금융시장 활성화를 유도하는 데는 이러한 재정 상황이 기본 배경이 되고 있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외자유치에 적극적


일본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340엔에 달하는 우체국 자금을 민간 금융기관으로 이동시켜 금융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어 외국 자금을 적극적으로 일본시장에 끌어들이겠다는 목적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은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국민들은 개혁의 당위성을 인정해 현정권을 지지했으나 공무원 삭감 등 구조 조정이 지속되고,재정 건전화를 위한 증세(增稅)가 진행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들이 개혁에 따르는 고통을 얼마나 인내할 수 있을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도쿄=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