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서 황금을 건진 남자.' 인도 출신으로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인 미탈스틸(Mittal Steel)을 이끌고 있는 라크시미 미탈(Lakshmi Mittal·54)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사막과 같은 척박한 땅인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주에서 태어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이어 세계 3위의 부자(총재산 약 25조원)가 된 미탈.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부실 제철소를 인수해 우량 회사로 탈바꿈시키는 수완을 발휘해 세계적인 거부,철강업계 최고의 기업가가 됐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를 닮았다고 해서 '콜카타의 카네기'로 불리는 미탈은 척박한 라자스탄주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콜카타로 이주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는 콜카타 재비에르대학 경영학과를 다녔다.

오전에는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5만t 규모의 작은 전기로 업체 일을 도우며 힘겹게 생활했다.

이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인도는 국영 철강회사와 민영회사 각각 한 곳에 사실상 철강 산업에 대한 독점권을 줬다.

미탈의 아버지는 이런 규제정책 탓에 인도에서 성장 기회가 없다고 판단,미탈을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25세의 미탈은 인도네시아에서 부도가 난 소형 철강업체를 인수해 수익성 있는 회사로 변화시켰다.

이민자나 흑인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를 활용해 회사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소형 철강업체에 시련을 준 인도 정부의 정책이 거대 다국적 철강회사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셈이다.

미탈은 인도네시아 회사를 발판으로 세계 무대에 진출한다.

원료 조달 문제로 애를 먹던 미탈이 해결책을 찾아나서면서 또 한번의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고,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983년에 대체원료인 DRI(Direct Reduction Iron)에 주목했다.

DRI는 가스를 이용해 고체 상태의 철광석을 직접 환원하여 철원을 제조하게 해준다.

이 원료를 찾아 나선 미탈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철강회사 이스콧(ISCOTT)을 알게 됐고 이 회사로부터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받게 된다.

미탈은 특히 트리니다드 토바고 정부가 가동률이 30%에 불과하던 이스콧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 회사에 매각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알고 좋은 조건을 제시해 인수에 성공,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이쯤 되니 '턴어라운드(설적호전) 전문가'란 명성이 쌓이게 됐다.

시카르트철강을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그는 구조조정 전도사로 통하게 됐다.

미탈은 여세를 몰아 캐나다의 시드벡과 독일의 함부르크제철소를 잇따라 인수했고 체코 카자흐스탄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구권 국가에까지 진출해 턴어라운드 성공 신화를 일궈 나갔다.

그가 부실기업의 턴어라운드에 귀재가 된 것은 인수 대상 회사를 선정할 때 '2년 이내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는 인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철강회사들은 왜 이런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을까.

그는 여타 외국 철강업체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다.

외국 업체들의 눈에는 설비가 낙후됐고 비효율적인 동구권 철강회사들이 매력적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탈은 자신있게 이들을 선택했다.

그는 최첨단 철강 기술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낙후돼 있지만 현재 설비를 잘 보수하고,중급 수준의 기술만 확보해주면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철강 내수 수요를 충당해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특히 동구권 업체는 효율성만 잘 확보하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남들이 버린 쓰레기더미에서 경쟁자 없는 거대한 시장인 '블루오션'을 찾아낸 것이다.

남들과 다른 시각,남들과 다른 비전이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미탈에게 미국 철강업체 ISG를 판 윌버 로스는 "그의 타이밍은 흠잡을 데가 없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업체를 인수해서 모든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남국 한국경제신문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