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나 친척들 중에 해외 유학생이 없는 가정이 드물 만큼 해외 유학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부모가 해외파견 근무를 할 때 따라가는 조기유학과 석ㆍ박사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한 대학 진학이 유학수요의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가족의 해외이주나 진로에 대한 분명한 계획에 입각해 해외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보다 단기 어학연수나 취업난에 떠밀린 도피성 유학 등 불필요한 '해외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는 빠져도 어학연수는 간다"

유학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영어 등을 배우기 위한 단기 어학연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상당수가 방학만 되면 해외 어학연수기관으로 향하고 있다. 법정 출석일수 한도 내에서 결석까지 하면서 어학연수에 매달리고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교육인적자원부에 요청해 입수한 '학교별 출국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여름방학을 전후해 해외로 출국한 초ㆍ중ㆍ고교생은 1만2249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체류기간은 50.4일로 방학기간(40.3일)보다 길다. 열 명 중 네 명(38.5%)꼴로 방학 기간보다 길게 해외에 머물렀다.

특히 초등학생 출국자(9310명)는 42.8%가 41일 이상 해외에서 체류했다. 통상 7일간의 해외 체류는 체험 학습으로 인정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초등학생 출국자 가운데 하루 이상 결석하는 학생은 세 명 중 한 명(33.5%)에 달한다. 한 달 이상의 장기 결석을 감수하며 해외로 떠난 학생이 출국자의 9%인 1114명이나 됐다.

단기 어학연수를 한 번 떠난 학생들은 다음 방학에도 해외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영어교육종합기업 쎄듀(www.ceduenglish.com)가 서울지역 97개 고등학생 412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28일부터 7월4일까지 조기 어학 연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어학 연수를 다녀온 학생의 88% 이상(58명)이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어학 연수를 가고 싶다"고 밝혔다.

쎄듀의 김기훈 대표는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영어권 국가로 '묻지마 어학연수'를 떠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보내지 않으면 내 아이가 뒤떨어진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겹친 탓"이라고 설명했다.

◆"취직 못하면 유학가지 뭐"

취업 대신 해외 유학을 택하는 대졸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에서 학위를 따 두면 취업에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해외행을 택하는 것.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에 따르면 최근 신입구직자 12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취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해외연수나 유학'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네 명 중 한 명꼴인 24.4%(98명)에 달했다.

잡링크 관계자는 "구직기간이 1년이 넘는 장기 구직자가 전체 구직자의 30%에 이르는 등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시간을 벌기 위해 혹은 경력을 늘리겠다는 막연한 이유에서 해외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똑똑한 내가 왜 한국 대학을 가?"

고등학교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학생들이 한국이 아닌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대학보다는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편이 자신의 뜻을 펴기 좋다고 판단한 것.

대원외국어고 민족사관고 등과 같은 외국어고와 자립형 사립고들은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해외유학반을 편성했고 일부 학교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대원외고는 올해 해외유학프로그램(Global Leadership Program)반 학생 49명 전원을 해외 대학에 보냈다. 민족사관고도 올해 27명의 유학반 학생 전원을 미국 대학생으로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A급 인재'가 해외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대원외고의 김일영 교감은 "똑똑한 학생들은 '붕어빵 교육'을 시키는 한국대학은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한 명이 만 명을 먹여살리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경쟁력을 갖지 못해 고급 인재를 해외로 빼앗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송형석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