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끝난 독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제 1야당인 기민당에는 35.2%,집권여당인 사민당에는 34.3%의 지지의사를 보냈다.

기민당의 지지율은 한때 50%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투표에서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지지를 거둬들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30%를 밑돌던 사민당의 지지율은 막판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기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반전하고 사민당은 지지율이 상승반전한 요인은 무엇일까.

독일식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독일인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반된 평가

독일총선 결과에 대해 이웃나라인 영국과 프랑스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1979년 총선에서 승리한 마거릿 대처가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던 영국의 언론들은 "신자유주의를 통한 경제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총재의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이 막판 제동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럽식 복지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미셸 알리오 국방장관은 "이번 선거에서 독일 국민은 완전한 자유주의적 모델의 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독일 총선의 주요 이슈는 경제개혁이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끈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복지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절충형 개혁을 내세웠다.

반면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자유경쟁 풍토를 조성하겠다고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민당의 아젠다2010은 '절충형 개혁'

'독일병'으로 불리는 독일 경제체제의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데에는 좌파인 사민당도 공감하고 있다.

사민당은 슈뢰더 총리가 2003년 3월 발표한 '아젠다2010'이라는 중장기 사회·경제개혁 프로그램을 그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실업자 수는 늘어나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이른바 '독일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도입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젠다 2010의 주요내용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선하고 사회복지제도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해고제한 규정을 완화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실업자가 특별한 사유 없이 추천된 일자리를 거부할 경우 실업수당을 축소하는 법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퇴직연금 수령개시 연령을 2년 연장해 67세로 올린 것도 사회복지를 축소한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로 불리는 독일식 시스템을 일부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실업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등 사민당의 개혁정책은 실효성을 의심받아 왔다.

올해 한때 실업자가 500만명을 넘어서고 실업률도 11∼12% 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기대만큼 올라가지 않았다.

◆기민당은 '미국식 자유경쟁체제'도입 강조

반면 기민당은 미국식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사민당 정부의 일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기업들은 여전히 근로자를 자유롭게 고용·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성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기민당은 실제로 산업별로 진행되는 노사협상을 개별기업 단위로 바꾸는 것과 기업의 자유로운 해고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것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놓았다.

상당수의 독일 기업은 개별노조와 임금·단체협상을 벌이지 않고 산업별 노조대표를 상대로 협상테이블에 나선다.

예컨대 폭스바겐 BMW와 같은 자동차회사들은 금속노조연합 대표와 협상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개별기업의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이 나쁜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여전히 미련

사민당과 기민당의 경제정책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요약하면 사민당은 '근로자의 고용과 복지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반면 기민당은 기업 자율권을 내세우고 있다.

이번 총선결과를 놓고 보면 독일의 유권자들은 '자유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도 않았다.

김호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