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14. 현대는 숫자정보 사회다

영국의 비평가 H.G. 웰스(Wells)는 "언젠가는 통계적 사고력(statistical thinking),즉 숫자를 올바로 이해하는 능력이 쓰기나 읽기처럼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숫자를 만들어 내느라 종일 분주히 일하고,이렇게 생산된 수많은 숫자 속에 묻혀 그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바야흐로 숫자를 위한,숫자에 의한 행위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현대를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결국 숫자로 요약되므로 현대를 '숫자정보사회' 혹은 '숫자화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웰스가 말한 대로 숫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읽고 쓰는 능력 못지않게 현대사회에서 이미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능력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필수적인 능력을 갖추기는커녕 숫자를 대하는 데 자신 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새뮤얼슨이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개나 고양이,금붕어를 좋아하는 것은 고상한 취미로 여기지만 숫자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약간 돈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한 것이 바로 수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나 신문 방송 등에서 매일매일 마주하게 되는 숫자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아이러니컬하다.


무엇에 대해서 무척 많은 시간을 배우고 또 늘 가까이 접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은 아마 숫자가 유일할 것이다.


숫자와의 인연은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신생아로 태어나 제일 처음 받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예컨대 3.6kg이라는 숫자다.


이 숫자는 한동안 꼬리표로 따라다니며 아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정상아인지 우량아인지)의 근거로 쓰인다.


자라면서는 학교에 가기 훨씬 전부터 속셈학원이다,눈높이수학이다 하는 것들로 숫자화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다른 어떤 과목보다 수학을 많이 배운다.


칠판 가득한 숫자나 기호를 노트에 베껴 쓰고 다양한 계산과 응용문제를 습관적으로 풀면서 숫자화시대에 유능한 사람으로 적응하기 위한 지식체계를 쌓아 간다.


학교 밖의 생활에서도 숫자화 경향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


사회현상이나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숫자로 표현돼 우리와 쉴새없이 마주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지능은 IQ로,경제현상은 GDP(국내총생산)나 물가지수 주가지수 등으로,날씨의 변화에 따른 우리의 느낌은 불쾌지수로,심지어는 빨래가 마르기에 적당한 날씨인가까지 빨래지수로 표현한다.


정치인의 인기도나 정부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여러 기관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우리에게 퍼부어 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혹은 '최근 조사에 의하면'으로 시작되는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 많은 사람들이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감상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노래 가사나 제목들까지도 '그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99.9'등이 등장하고 있다.


책 제목도 '99%의 사랑''120% Cooool' 등으로 붙인 것이 있다.


심지어는 가장 시적(詩的)이어야 할 시(詩)에도 구체적인 숫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 버스를 타는데,뒤에서 두 번째 오른쪽 좌석에 누군가 한 상 걸게 게워낸 자국이 질펀하게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서로 먼저 앉으려다 소스라치면서 달아났다. 거기에는 밥알 55%,김치찌꺼기 15%,콩나물 대가리 10%,두부알갱이 7%,달걀 프라이 노른자위 흰자위 5%,고춧가루 5%,기타 3% 順으로."(황지우 詩, 버라이어티 쇼, 1984 중 일부)



사람들의 대화는 또 어떤가? "아파트는 몇 평짜리냐" "자동차는 몇cc냐" "월급이 몇 퍼센트 올랐느냐" 등등 모든 것을 숫자화해서 주고받고 있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한 말처럼 우리들은 이미 숫자에 길들여진 것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네가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들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네게 진짜 알갱이가 되는 것을 묻는 일이 없다. 어른들은 네게 "그 애 목소리가 어떻든? 그 애는 어떤 놀이를 좋아하지? 그 애는 나비를 수집하고 있니?"라고 묻는 적이 한번도 없다.


그들은 "그 애가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냐?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니?"라고 묻는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 애를 안다고 믿는다. 만일 네가 어른들에게 "난 지붕 위에 비둘기들이 놀고 창틀에는 장미꽃이 피어 있는 붉은 벽돌의 예쁜 집을 보았어"라고 말하면,그들은 그 집을 머릿속에 그려 보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난,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말하는 편이 좋다. 그제야 그들은 "야, 근사한 집이구나"라고 외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中에서)



직장에서도 역시 그렇다.


회사원이 야근까지 하면서 일한 결과는 종종 몇 개의 숫자로 요약돼 사장에게 보고된다.


사장은 보고 받은 숫자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새로운 숫자로 목표를 세워 지시한다.


따라서 회사원의 능력평가와 승진은 개인이 달성한 숫자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우리가 숫자를 좋아하고 숫자 속에 묻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숫자를 두려움 없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고도화한 숫자화사회에서 숫자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실제로 숫자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어진 정보를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고,그로부터 올바른 판단이나 결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


현대에서 문맹이란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에 두려움을 갖고 손쉽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존 파울로스(John Paulos) 교수는 이를 수문맹(innumeracy)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표현했다.


더욱이 미래의 정보화 사회에서 숫자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 예상되므로 수문맹을 극복하는 것,즉 필요할 때 숫자로부터 올바른 판단을 끄집어내거나 이러한 숫자에 기초해서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웰스가 예언한 대로 쓰기나 읽기처럼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김진호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