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미국 강타로 국제유가 연일 최고치 경신

▶ 한국경제신문 8월30일자 A1면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멕시코만의 석유생산 설비를 강타하면서 29일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시장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대 허리케인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카트리나의 피해가 확대될 경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장 미국은 카트리나 상륙을 앞두고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민 100만명 이상을 대피시키는 등 초긴장 상태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 시간외거래에서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10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 종가보다 3.51달러(5.4%) 오른 배럴당 70.8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1983년 원유 선물 거래가 도입된 이후 사상 최고치다.


뉴욕=하영춘 한국경제신문 특파원·유영석 국제부 기자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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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정제로 큰 돈을 벌어 석유왕 소리를 들었던 록펠러는 석유를 '악마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석유가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고 인간 생활을 향상시켰지만 반대로 오염과 자연 파괴,개발 이권을 둘러싼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는 등 '축복과 재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석유값이 요즘 또다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석유값 불안은 언제나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국제 유가는 왜 오르고,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슬기롭게 대처할 방안은 없을까.


◆국제 유가 왜 오르나


최근 국제 유가(미국 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은 직접적인 요인은 미국 남부를 휩쓴 허리케인이다.


초대형 허리케인이 미국 내 석유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멕시코만 석유시설을 강타하면서 석유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리케인으로 망가진 시설이 고쳐지면 석유값이 내려갈까? 대답은 '아니오'다.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세계 석유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원인을 두고 있어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1973년과 1979년의 1차,2차 오일쇼크 때처럼 과거의 석유위기는 전쟁 같은 우발적이고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일시적인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을 촉발했고,공급이 재개되면 유가는 다시 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중국 인도 등의 경제성장이 가파르게 이뤄지면서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난 반면 공급은 수요 증가를 따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석유 소비는 지난해 16% 증가했는데 이는 전 세계 석유소비증가율 3.4%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석유를 빨아들이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여기에 전 세계 석유의 50%를 공급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오일달러 확보를 위해 고유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고,유가가 상승세를 이어가자 국제적인 헤지 펀드들이 투기 거래를 통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게다가 산유국의 추가 생산 여력 고갈과 주요 소비국의 정제 능력 부족이란 근본적인 문제들이 깔려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최악의 경우 16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얘기들도 나온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고유가는 상품의 제조원가를 높이고 수출단가의 상승을 가져온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유가 상승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유가가 연평균 10달러 상승하면 수출품목의 제조원가 및 수출단가 상승을 불러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한국 10대 주력 품목의 수출은 연간 40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있다.


유가가 오르면 세계 물가가 일시에 상승하고 이는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수출 대상국들에서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불안과 소비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5%에 달해 3개월 만의 최고치였고,영국도 7월 물가 상승률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가는 얼어붙은 기업들의 투자심리와 민간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킨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신규 투자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해 소극적인 경영에 치중하고,소비자들도 지갑을 더 닫는다.


경제가 살아나기 힘들어지게 되는 시나리오다.


유가 상승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의 충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체제 시급


유가 상승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이다.


단기적으로 에너지 절약대책을 마련하고,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에너지 공급능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승용차 10부제 같은 소비억제 대책은 당장 실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를 보면 이 같은 소비억제책을 통해 아낄 수 있는 에너지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국민생활에 불편만 줄 것이란 반론이 클 정도다.


내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벌이는데도 정부에서 선뜻 소비억제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은 주로 중·장기대책으로 흐르고 있는데,크게 보면 해외에서 유전을 개발해 들여오겠다는 해외자원개발 활성화와 신·재생 에너지 개발이다.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활성화를 통해 지금 3~4% 남짓한 원유 자주개발률을 2008년 10%,2013년 15%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2011년까지 9조원을 투자해 태양열 및 태양광 풍력 바이오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에너지의 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정부 목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은 2%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덴마크 10.4%,독일 7% 등에 비해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중·장기 계획의 성공 여부는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국가전략의 중심에 세우고 이를 집행하는가에 달려있다.


에너지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육동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dongin@hankyung.com



< 석유관련 용어 풀이 >


◆서부텍사스 중질유 (West Texas Intermediate)=세계 최대 선물거래소인 뉴욕상품거래소(NewYork Mercantile Exchange:NYMEX)에 상장돼 기준 원유로 사용된다.


미국 서부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주 일대에서 생산된다.


생산비가 높고 품질이 좋아 국제원유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두바이유(Dubai oil)=유황 함량이 많고 질이 떨어져 가격이 가장 낮다.


중동 국가들과 싱가포르에서 현물로 주로 거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의 원유가격이 두바이유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78%를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두바이유 가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브렌트유(Brent oil)=런던의 국제석유거래소(IPE)에서 선물로 주로 거래된다.


하루 산유량은 75만배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