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13. 역술가는 미래의 유망직업?

이문열 소설 '어둠의 그늘' 중에는 '인간이란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해 얼마나 나약하고 비논리적이 되는지…'라는 대목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을 애용(?)한다.


나는 전공이 경영학이기 때문에 가끔씩 유망 직업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농담으로 미래 유망직업 중 하나가 역술가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을 치는 일이 정보 산업,첨단 과학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일과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하는 유망 직업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순위 면에서는 당연히 역술은 꼴찌에 가깝다.


그러나 역술은 전문 자영업(?)으로서 사업에 유리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갖고 있다.


유망한 직업은 우선 그 직업이 파는 상품(혹은 서비스)에 대해 수요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점을 보려는 사람들,즉 역술에 대한 수요는 현대문명 사회 속에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입시철 신정 구정 등 운세의 성수기뿐만 아니라 각종 선거로 인한 특수도 있고 또한 개인의 사회 경제 정치적인 고민은 사철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므로 점에 대한 수요는 불경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점성술의 역사나 주역(周易)이 씌어진 시기 등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꽤 오래 전부터 운명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명론적 사고,즉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운명을 미리 엿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오래 전부터 갖게 한 것이다.


복잡하고 다원화한 현대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그런 욕망은 무언가 기댈 곳을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그 필요성이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이 공장 부지를 물색할 때 반드시 지관과 동행했다든지,신입사원 채용시 관상을 따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만은 물론 아니다.


미국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사원을 뽑을 때 고용 조건으로 골상 검사를 받도록 요구했고 또 결혼하려는 많은 예비 부부들이 골상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백악관에서 아내 낸시와 함께 점성가를 만난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지난 20년간 거액을 들여 심령술사들을 고용했다는 사실도 최근에 밝혀졌다.


그러나 역시 역술에 대한 수요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일류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신년운수 입시 결혼 선거 작명 사업확장 빌딩위치 대리점위치 개업일 이삿날 묘자리 등등 운세를 따지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수요가 넘쳐나는 시장(市場)인 역술은 유망 직업으로서의 필요 조건을 만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둘째는 상품(점)을 파는 일이 상대적으로 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다.


날짜나 자리를 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식으로 고객에게 왜 특정한 날짜나 자리가 좋은지를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옷을 고르는 고객처럼 색상 디자인 등에서 까다롭지가 않은 것이다.


합격여부 당락여부 등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판단을 결합하여 결정하면 된다.


경험이 쌓이면 이 분야에서도 맞힐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맞히는 것은 맞힐 확률이 2분의 1씩이나 되며 그래서 다음과 같이 광고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기가 아들일까 딸일까? 유명한 심령술사가 임산부의 앞모습 사진만으로도 태아의 성별을 알려드립니다.


임신은 3개월이 지나야 하며 틀릴 경우에는 돈을 돌려드릴 것을 보장합니다.


사진과 함께 돈 10달러를 아래의 주소로 보내십시오…."


물론 이 심령술사가 반은 맞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당신이나 나도 맞힐 수 있을 것이다.


못 맞힌 경우에 약속대로 돈을 돌려주더라도 평균적으로 한 번 보는 데(아무렇게나 추측하는 데) 5달러씩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점이 우연히 맞게 되면(이런 우연은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놀라서 용하다고 선전을 열심히 하고 다니므로 저절로 광고가 된다.


점이 혹시 틀리는 경우에도 문제는 전혀 없다.


불량 상품을 만들면 처벌받고 서비스가 나쁘면 항의를 받지만 사람들은 자비롭게도(?) 틀린 점은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린다.


점이 틀렸다고 찾아가서 항의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점이 너무 심하게 틀리더라도 다음의 예와 같이 그저 개인적인 웃음거리로 남을 뿐이다.


"지금까지 쉬쉬하다가 여기서 처음 밝히는 얘기지만,그(시인 고은)와 나(작가 이문구)는 한때 볼썽사나운 속된 취미 한 가지를 즐긴 적이 있다.


말하건대 어디에 '용하다'는 집이 있으면 체면도 위신도 없이 찾아가서 돈 내고 '물어보는' 일이었다.


…하루는 일초(一超,고은의 法名)댁의 술판이 길어져 하릴없이 앉은 자리에서 자고는 또 식전부터 본병이 도져서 그를 꾀송꾀송 꼬드껴 가지고 물어볼 일도 없이 택시로 물어보러 가게 되었는데,정장 차림의 50대 도사는 일초의 사주를 한참 연구하더니 이윽고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이,"조오타! 좋아! 이젠 됐소. 올부터는 평생 탄탄대로에 관운(官運)도 대통이오." 도사는 축하 인사를 겸하여 같은 말을 서너 축이나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나오고 나오면서 웃었다.


하루도 성한 날 없이 관재(官災)에 부대껴온 시인더러 난데없이 관운 대통이라니….내가 낸 것은 아니지만 복채가 아까웠다.


그런데 그는 그 관운대통의 축사를 듣고 두어 달포도 안 되어 5·17로 감옥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서 징역 15년. 생각할수록 우스운 관재대통이었다."(이문구,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중에서, 열린세상, 1994, 23쪽)


김진호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