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왜 안 살아나지?] 부채 급증ㆍ중산층 감소로 소비 '깊은 잠'

지난 3월 말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열렸다. 국민경제자문회의란 국내의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모여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는 자리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는 '왜 소비가 부진한가'가 주제였다. 소비 부진이 2년 넘게 계속되자 이제 대통령까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소비 부진은 최근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왜 소비가 중요한가


소비 부진의 원인을 살펴보기에 앞서 소비가 왜 국민 경제에서 중요한지부터 간략하게 알아보자.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소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과 해외에서 소비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보통 가계 소비가 침체돼 있다고 말할 때의 소비는 국내 소비를 말한다. 해외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수출이다.


국내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통업체들의 판매 부진→기업들의 생산 감소→투자 부진→일자리 감소→가계소득 감소→소비 부진'과 같은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경제 성장률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소비 발목 잡는 가계 부채


소비의 역할이 이처럼 중요하다면 과연 소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일까. 그렇지는 않다. 경제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많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소비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빚을 내서까지 소비하게 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최근 소비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분에 넘치는 소비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다. 2000년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카드를 발급받아 닥치는 대로 소비했다. 덕분에 2000년도 가계소비 증가율은 8.6%로 1990년대 평균(5.7%)을 크게 웃돌았다. 경제 성장률도 8.5%에 달했다. 그러나 가계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9년 약 293조원이던 가계 부채는 매년 20∼30%씩 늘어 3년 후인 2002년에는 505조원으로 증가했다. 카드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361만명에 달했다.


이처럼 가계 부채가 늘다 보니 사람들은 설령 소득이 생기더라도 이자 및 원금 상환부담이 너무 커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비부진 장기화될 수도


가계 부채가 소비 침체의 주요인이라면 개인들이 빚을 다 갚고 나면 소비는 살아날 수 있을까. 물론 가계부채 부담이 절정에 달했던 재작년과 작년보다는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활발한 소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환경 자체가 큰 폭의 소비 증가세를 어렵게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승자 독식의 경쟁 사회로 빠르게 이행하면서 중산층은 줄어드는 반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소득층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보다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고소득층 증가는 국내 소비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중산층 붕괴로 인한 저소득층 증가는 국내 소비 증가를 제약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있다는 점도 소비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령자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일정한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젊은 층은 고령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소비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정년 단축 등으로 직장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도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노후 대비를 위한 저축을 늘리기 때문에 현재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